코스피지수가 외국인투자가의 매수 확대에 힘입어 한 달 만에 2700대로 올라섰다. 금융투자 업계는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손 우려에도 외국인들이 올 들어 사상 최대 수준으로 국내 주식을 매집한다는 점을 들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정부가 세제 등 실질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투자 불씨를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7.73포인트(2.16%) 오른 2734.36으로 마감했다. 3일(현지 시간) 미국 고용지표가 다소 둔화됐다는 소식에 연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외국인이 1조 1150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영향이 컸다. 기관투자가도 7748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에 힘을 보탰다. 코스피가 2700대에 오른 것은 지난달 11일(2706.96)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지수도 이날 0.66% 상승한 871.26에 장을 마쳤다.
올 들어 이날까지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들인 주식 순매수 규모는 총 20조 3546억 원에 달한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2009년(32조 3864억 원), 2010년(21조 5731억 원) 이후 역대 세 번째다. 외국인은 올 들어 매달 매수 우위 행진을 이어가면서 규모를 계속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초 중국 시장 등에서 이탈한 자금이 밸류업 시행에 따른 기대감, 식지 않은 금리 인하 전망 등과 맞물리면서 국내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간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한 상황에서도 외국인 투자를 자극하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한층 구체화할 것을 조언했다.
문제는 시총이 적고 거래량도 많지 않은 상장사들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세조종 등 각종 불공정 행위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및 나스닥 시가총액은 49조 8448억 달러(6경 7639조 원, 환율 1357원 기준)로 한국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시장의 시가총액 1조 9116억 달러(2594조 원) 대비 26배로 나타났다.
반면 상장사 수는 뉴욕증권거래소 2256개사, 나스닥 3411개사 등 5667개사로 한국 전체 상장사인 2570개사 대비 2.2배 수준에 그쳤다. 우리나라 증시가 그만큼 내실 없이 웃자라기만 했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는 시총 규모가 비슷한 대만 등과 비교해도 상장사 수가 40% 이상 많다. 대만증권거래소와 타이베이거래소 전체 시가총액은 2조 983억 달러(2847조 원)로 한국을 앞서고 있으나 상장사 수는 1827개로 740개 이상 차이가 난다.
기업공개(IPO)나 물적·인적 분할 등으로 상장하는 기업은 계속 증가하는데 퇴출 기업은 거의 없다 보니 상장사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규모 대비 상장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시세조종 등에 악용될 여지가 크고 좀비기업들이 정상 기업으로 흘러갈 자금을 끌어가는 폐해도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장만 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밸류업의 걸림돌이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기업이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상장밖에 없다 보니 상장이 너무 많이 이뤄져 관리하기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며 “상장사를 강제로 상장폐지할 수 없는 만큼 당국이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IPO 통로를 조금 더 좁힐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운용사인 앰플리파이의 크리스티안 마군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것은 산업과 인프라, 세계적 브랜드 등을 고려했을 때 ‘모욕적’”이라며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만큼 조금 더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이행과 관련해 강제성이 없다 보니 소액주주의 이익을 제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가령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개정하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면 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면 대주주도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밸류업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정치권도 열린 자세를 갖고 법 개정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최근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에 실망을 표출했지만 추가 정책 강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며 “주주환원을 손금에 산입하거나 배당소득을 주주 대상으로 분리 과세하는 법을 제정해야 기업의 실제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