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하하 핫!” “웃지 마! 시끄러 죽겠어.” 방송인 김구라와 필드에서 티격태격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대중적으로 친숙해진 ‘박사장’.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연예인처럼 된 그는 박사장 외에도 초롱이, 초롱좌, 미스터 130 등으로 불리며 김구라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뻐꾸기골프’의 성장에 한 몫 단단히 했다.
불룩 솟은 배에 극단적인 오버 스윙,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비거리 등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캐릭터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김구라와 박사장은 ‘매너가 골프를 만든다’는 따위의 위선(?)은 차버리고 “진짜 더럽게 못 친다” “야, 내가 훨씬 나아” 등 서로 물고 뜯는 리얼 야생 골프를 선보였다.
박사장은 별명이자 성씨에 직책을 붙인 것이다. 박사장의 실제 이름은 박노준. 1967년생인 그의 본래 캐릭터는 한 회사를 이끌고 있는 대표다. 골프백 전문 제조업체인 포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업력 25년 차다. 그의 회사는 국내 이외에 중국에서도 2곳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골프백 제조업체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골프 애호가인 그는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기도 한다. 김구라, 이경규 등 잘 나가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한국골프의 레전드인 최경주, 박세리와도 친분이 있다. 특히 최경주재단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대표는 다양한 인맥의 비결로 ‘전화’를 꼽는다. “전 운전을 하다가도 생각나면 무조건 전화해요. ‘다음에 해야지’ 하면서 미루면 절대 안 돼요. 왜 문자가 아니고 전화냐고요? 육성을 들으면서 대화를 해야 서로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거든요.”
박 대표는 라운드 파트너로도 인기가 높다. 볼 한 번 같이 치자는 제안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저의 친근한 이미지 때문이겠죠. 실제로도 골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재밌게 치려고 해요.”
‘명랑 골프’를 추구하지만 그는 몇 가지 합의된 예외만 제외하고 룰은 꼭 지키려고 한단다. 보통 90타 초반이나 중반 타수를 친다며 호기롭게 덤비는 상대들도 룰대로 치면 대부분 100타 넘기고선 꼬리를 내릴 때가 많다는 게 그의 말이다.
뻐꾸기골프 외에 직접 ‘노가리TV’를 운영했던 그는 요즘 잠시 유튜브 채널을 떠나 있다. 사업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그의 사업과 골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유튜브 활동이 예전에 비해 조금 뜸하던데 어떻게 지내나.
“내가 사실 방송인도 아닌데 그동안 너무 자주 얼굴을 비춘 측면도 없지 않다. 계속 나가면 진부하지 않나. 소재가 고갈된 부분도 있다. 내가 운영하는 채널도 콘셉트를 새롭게 짜기 위해 잠시 중단했다. 또 내 본업도 있지 않나. 요즘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사업에도 집중해야 해서 바쁘게 지낸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어떤가.
“사업이라는 게 잘 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 때 골프 관련 업종은 좋았다. 근데 아쉬웠던 건 원부자재 값도 덩달아 올랐다는 거다. 따져보니 매출은 뛰었는데 이익은 줄었더라. 요즘 같은 시기에 우리 같은 중소 제조업체는 헤쳐 나가는 게 만만치 않다.”
코오롱과 삼성물산 다니다 30대 초반이던 2000년에 포시즌을 창업했다. 남들은 서로 들어가려는 대기업을 뛰쳐나온 이유가 있었나.
“큰 조직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솔직히 삼성에서 임원이 안 될 것 같았다. 어정쩡한 나이에 나오느니 차라리 빨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포장마차를 하더라도 내 거를 하고 싶었다. 물론 나라고 망설임이 왜 없었겠나. 그래서 점도 봤다. 그랬더니 사업할 팔자라고 하더라. 그 말에 힘을 얻고 나왔다. 하하.”
부모님의 도움은 안 받았나.
“그렇게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가 아버님 돌아가신 지 1년 지났을 때였다. 당시 어머니가 ‘앉은뱅이가 일어날 때 그냥은 못 일어난다. 지팡이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막도장이 찍힌 국민은행 통장을 하나 툭 던져주시더라. 펼쳐보니 3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약 10년의 직장생활 경력과 그 돈이 전부였다.”
골프백을 전문으로 해서 성공했는데.
“운이 좋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남산의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골프연습장에 다니면서 골프를 접했다. 자치기 수준으로 배웠지만 골프에 일찍 눈을 뜬 거다. 코오롱과 삼성에서 골프 의류나 용품 등의 MD(상품기획자)로 일했는데 당시만 해도 골프 의류나 용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작 골프에 대해서는 모르더라. 내 사업체를 차린 뒤 골프의 기능성을 감안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상품에 접목했다. 근데 옷은 아무래도 경쟁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해 골프백 업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골프백에 집중했고, 인정을 받게 된 거다.”
현재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 되나.
“우리 가방 공장이 아마 국내에서는 1위일 거다. 주요 골프 전문 브랜드 외에 자동차 회사, 명품 브랜드 등과도 거래를 하고 있다.”
중국에도 공장이 있는데.
“내가 회사를 세운 게 정확히 2000년 3월 21일이다. 24년이 조금 넘었는데 나와 20년 이상 된 직원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정년이 아예 없다. 본인이 원하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다. 근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간 거다. 기술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 60세가 넘는데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회사가 계속 존속을 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포시즌은 골프백 외에도 골프화, 우산, 파우치 등 웬만한 골프 관련 용품은 모두 만들고 있다.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과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국내 주요 골프 브랜드에는 포시즌 출신 디자이너가 상당수다. 박 대표는 “최근에도 한 명이 다른 회사로 갔다. 우리가 ‘디자이너 학원’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툭 던진 통장 속 3000만원과 10년 직장 경력 밑천으로 사업 시작”
사업을 하다 보니 라운드는 자주 나가겠다.
“가끔 ‘어디서 날 봤다’ ‘맨날 골프장에 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나간다. 많이 나갈 때는 한 달에 8번, 적게 나갈 때는 한 달에 네댓 번 정도다. 시즌에는 아무래도 좀 더 자주 나간다.”
라운드 파트너로 인기가 꽤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재밌게 분위기를 이끄니까 그러지 않나 싶다. 밥 먹으면서 달력 꺼내놓고 ‘다음에 또 언제 칠까’ 이러는 사람도 있다. 바쁘다고 하면 ‘박 사장 좋은 날이 언제야’라고 한다. 그러면서 또 날짜가 잡히곤 한다.”
라운드를 하면서 지키는 원칙 같은 게 있나.
“룰대로 치려고 한다. 예외가 있다면 디보트와 벙커 속 발자국에 들어간 볼은 꺼내서 치고, 산속으로 사라진 볼은 로스트볼이 아니라 페널티 구역 처리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보통 국내 아마추어 골퍼들의 평균 실력이 90타대 중반 된다고 하지만 룰을 제대로 지켜서 세면 100타 넘는 경우 많다. 방송에서 내 모습 본 후 그거보다는 잘 치겠다고 덤볐다가 나한테 깨진 사람도 많다. 하하.”
김구라의 뻐꾸기골프를 통해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그러면서 뻐꾸기골프의 인기 상승에도 큰 역할을 했다. 뻐꾸기골프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사실 기여한 건 전혀 없다. 김구라가 아이디어가 되게 많은 친구다. 나는 유튜브가 뭔지도 모를 때 김구라가 우리 맨날 골프 치면서 티격태격하는데 진짜 아마추어 골퍼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떠냐며 찍자고 하더라. 사실 나는 1회만 출연하고 끝나는 거였다. 근데 ‘구력은 오래 됐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못 치냐?’ ‘스윙 폼이 웃긴데 한 번 더 나와 봐라’ 이런 반응이 나오더라.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은 것 같다.”
샷이 잘 맞으면 정치인이나 프로 골퍼가 박수에 화답하듯 손을 들어 올리는 포즈를 자주 취한다. 실제도 그런가, 아니면 콘셉트인가.
“나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좋아한다. 찡그린다고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든지 그러겠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또 어려운 시간 빼서 골프 치러 갔는데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동반자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자는 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잘 맞으면 그런 과장된 모습을 자주 보여주려고 한다. 또한 남이 못 치면 걱정이나 위로보다는 팍팍 웃으면서 ‘야, 진짜 더럽게 못 친다’ 이러기도 한다. 그런 명랑골프를 좋아한다.”
김구라 씨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내가 예전에 골프 브랜드 사업을 했었다. 그때 브랜드를 홍보를 해야 하는데 TV CF를 찍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연예인 마케팅이었다. 그때 제일 고마웠던 분들이 개그맨 이경규 형님과 김구라다. 그 두 분은 어딜 가든 우리 브랜드 옷만 입었다. 돈 한 푼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친해진 거다.”
항상 김구라 씨와는 누가 잘 치느냐로 티격태격하던데 실제 실력은 어떤가.
“처음엔 내가 더 잘 쳤고 중간에는 서로 엇비슷했다. 최근에는 구라 실력이 더 나아졌다. 근데 구라 골프를 보면 조금 애틋하다. 그 친구는 골프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강해서 레슨도 많이 받는데 실력은 그에 비해 안 느는 편이다. 너무 불쌍하다. 나는 레슨을 받거나 그러지 않는데 막상 필드에 나가보면 나랑 크게 차이 안 난다.”
드라이버 거리가 130m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김구라 씨가 ‘미스터 130’이라고 자주 놀리던데, 실제 거리가 그 정도로 짧은 편인가.
“예전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불었다. 술을 많이 마시다 보니 배도 나오고, 한 15kg 이상은 늘었다. 전에는 장타는 아니더라도 짧지는 않았다. 근데 배 나오고 연습도 안 하니까 팔로만 치게 된 거다. 그러면서 거리가 줄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130m 이상은 친다. 설정을 그렇게 한 거다. 왜냐하면 내 7번 아이언 거리가 130m다. 드라이버로 170m 정도는 때린다.”
코스에서 골프 외에 나름대로 찾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면 뭘까.
“내가 좀 게을러서 운동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골프 칠 때는 웬만하면 걸으려고 한다. 사실 비거리가 짧아서 카트를 탈 필요도 별로 없다. 하하. 어쨌든 풍경을 즐기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앞만 보지 않고 뒤도 본다. 티잉 구역에서 보는 풍경과 그린에서 티잉 구역 쪽으로 보는 풍경이 너무 다르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 골프장에서는 나무도 본다. ‘내년에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아니면 내가 죽어도 이 나무는 똑같이 꽃을 피울까’ 이런 생각들을 한다. 스코어만 생각하고 볼을 치면 너무 밋밋한데 이런 작은 것들에 관심을 두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골프 못 치거나 울컥 화 낼 수 있지만 분위기 망치는 골퍼가 제일 꼴불견”
유명인들과 자주 라운드를 하더라. 기억에 남는 동반자가 있나.
“특정인보다는, 정말 힘든데 같이 가서 볼을 찾아주는 동반자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귀찮을 때가 있어서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근데 끝까지 볼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못 치면 레슨이 아니라 덕담을 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들이다. 볼을 못 칠 수 있다. 때론 울컥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계속 끌고 가면 동반자들이 눈치를 보게 된다.”
이경규 씨와 유튜브에서 베스트 스코어가 이븐파가 맞다, 아니다로 싸우던데 진실은 뭔가.
“실제로 제주 크라운CC에서 대략 25년 전에 이븐파를 친 적이 있다. 당시는 70대 후반을 어쩌다 한 번씩 기록하거나 80대 초중반을 꾸준하게 치던 때였다. 그날은 정말 신들린 듯 이븐파를 기록했다. 희한했다. 보기 1개, 버디 1개, 그리고 나머지 16개 홀은 파. 당시 캐디 분이 아마추어가 이렇게 이븐파 친 거 처음 봤다고 하더라.”
골프를 인생에 자주 비유한다. 자신의 인생을 18홀로 비유한다면 버디를 몇 개나 잡은 것 같나.
“난 버디보다는 보기를 많이 했으면 한다. 너무 화려한 것도 싫고 그냥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꾸준하게 가는 게 내 소망이다. 보기 플레이어처럼! 앞으로도 이글이나 홀인원을 해서 대박 나는 것보다는 지금 이대로 몸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욕심이야 조금 있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골프 즐기면서 잔잔한 행복 느끼는 인생이 훨씬 낫다고 본다.”
지금 몇 번 홀쯤 끝났을 것 같나.
“최근 들어서 내 나이가 적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가 올해 88세이신데 나보고 ‘내 나이 금방 된다’는 얘기를 하신다. 근데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벚꽃 피는 걸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30년 후면 지금의 우리 어머니처럼 잘 걷지도 못할 수 있겠구나, 그런 세월이 오겠구나’ 한다. 마음은 아직 전반인데 현실적으로는 후반 10번 홀 정도 지난 것 같다.”
몇 살까지 골프를 즐기고 싶나.
“걷는 순간만큼은 하고 싶다. 한 7~8년 전에 서울한양CC에 간 적이 있다. 뒤 팀에서 연세 드신 분들이 치고 있더라. 퍼팅을 안 하고 그냥 걸으면서 자치기 하는 수준이었지만 잔디 밟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 보였다. 나도 가급적 오래도록 하고 싶다.”
홀인원을 한 적이 있나.
“홀인원은 못해봤지만 이글은 몇 차례 해봤다. 8번 정도 한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은 샷 이글인데 2온에 1퍼트 이글도 한 번 했다.”
퍼팅 이글은 장타자가 아니면 힘든데.
“약 15년 전에 파인크리크CC의 내리막 홀에서 했다. 마침 뒤에서 바람이 엄청 불어서 2온에 성공한 거였다. 그냥 핀으로 쐈는데 그게 홀 7m 정도에 붙었다. 지금은 아무리 비바람이 불어도 2온은 상상도 못한다.”
인맥이 되게 다양한 걸로도 유명하다. 비결이 뭘까.
“특별한 거 없다. 난 생각나면 바로 전화한다. 미루지 않는다. 운전할 때도 ‘이 사람 어떻게 지내지’ 궁금하면 바로 전화한다. ‘다음에 하지 뭐’ 이렇게 미루다 보면 결국 못 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러면서 연락이 끊기는 거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연락을 하면 또 연락이 오더라. 그런 게 다양한 인맥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난 카톡이나 문자 이용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억양이나 이런 것 때문에 육성을 들어야만 서로의 정을 더 느낄 수 있다. 현재 전화도 2대인데 하나는 일반 전화고,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이다. 일반 전화가 메인이고 스마트폰은 e메일 확인이나 사진 전송 등 업무용으로만 사용한다.”
아까 어머니 얘기를 잠깐 했는데, 어머니와도 자주 통화하나.
“내 목표가 아침에 출근할 때 어머니랑 통화하는 거다. 매일 습관화됐다. ‘잠 잘 주무셨어요’ ‘아침 뭐 드셨어요’ 이런 소소한 거 여쭤본다. 근처에 사시기 때문에 조금 일찍 나오면 어머니 얼굴 잠깐 보고 오려고 한다. 퇴근할 때도 전화한다. 그래서 하루에 평균 1.5회는 어머니와 통화한다. 딴 거 못 해드려도 안부전화 자주 하고 얼굴 보여 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사업 조언은 1년 선배한테 구하는 거 아냐 ‘소소한 행복’ 느끼면서 꾸준하게 정진해야”
다시 사업 얘기를 좀 더 해 보자. 대중적으로 이름도 알렸으니 브랜드를 키워볼 생각은 없나.
“브랜드 하나를 키운다는 게 만만치 않다.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데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내 브랜드(데니스골프)를 키우려다 손해를 많이 봤기 때문에 이제는 안 하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나.
“그때는 내가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이라곤 돈을 구하는 것밖에 없더라. 매달 몇 억 원씩 들어가는데 환장하겠더라. 규모를 키우려고 하다 보니 벌면 벌수록 돈이 더 들어갔다. 결국 내 브랜드를 고집하다가는 우리 직원들과 협력업체에 피해만 주게 생겼더라. 그래서 2018년 매각했다. 그런 아픔이 있어서 공격적인 세일즈는 잘 안 하는 편이다.”
BSJ 브랜드가 있지 않나.
“그건 사실 얻어 걸린 거다. 볼은 정말 많이 나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재미있는 스토리 있는 걸 좋아하더라.”
BSJ는 박사장과 불사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박 대표의 비거리가 짧아 OB 구역이나 연못 등으로 볼이 가서 죽을 일이 거의 없다고 해서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박사장 몰’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가.
“솔직히 사업이라는 건 투자를 좀 해야 한다. 근데 투자를 많이 안 했다. 그것 때문에 그냥 굴러가는 수준 정도다. 요즘은 트렌드가 금방 변한다. 거기에 맞추려고 하면 힘들다.”
사업 스타일이 또박또박 치는 골프와 비슷한 건가.
“그런 것 같다. 왜 그러냐면 사업에서 성공할 확률은 내가 봤을 때 10% 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차리지만 폐업이 얼마나 많나. 사업이라는 게 다 잘 될 것 같아서 시작을 해도 막상 하면 쉽지 않다. 예전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무모한 도전은 자제하는 편이다.”
내수 외에 수출도 하고 있나.
“일부 수출을 하고 있는데 좀 더 그쪽으로 눈을 돌리려고 한다. 아무래도 사업을 키우려면 결국은 수출은 해야 한다.”
요즘 사업을 하려는 젊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리 직원들한테도 항상 하는 얘기인데, 사업에 관한 조언을 구할 때는 대학교 1~2년 선배한테 의논하지 말라고 한다. ‘도긴 개긴’이기 때문이다. 훨씬 더 성공한 사람을 만나서 어드바이스를 들으라고 한다. 1년 선배 생각은 그냥 자기 생각과 비슷하다. 또 하나 해주는 조언은 거창한 꿈도 좋지만 소소한 행복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거다. 물이 하루만 안 나와도 어떤가. 머리 못 감고 세수 못 해 힘들다. 그런 것처럼 주변의 소소한 걸 지켜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야지 일확천금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 계통에 적어도 3~5년은 파고들어야 요만큼 보인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좋아서 히트 치는 건 진짜 100만분의1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한다는 건 허무한 꿈이나 다름없다. 난 주변에서 사업하다 망하는 사람 너무 많이 봤다. 사업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훨씬 가깝다.”
골프는 어떤가. 주변에 친한 프로들도 많아서 가끔 조언을 구할 텐데.
“최경주 프로한테 물어보면 그냥 즐기라고 한다. 최 프로도 내가 배울 자세가 안 돼 있다는 걸 아는 거다. 그립부터 고치라고 하는데 내가 죽어도 말을 안 듣는다. 그러니 그냥 즐기라고 하는 거다. 그래도 골프 실력으로 내 밑인 사람이 아직 많다. 나보고 왜 그렇게 골프 못 치냐고 하는데 막상 쳐보면 나한테 지는 사람들 많다. 그러면 내가 ‘겸상 안 한다’고 놀리고 상대는 ‘골프는 역시 겸손해야 돼’ 이런다. 그렇게 재밌게 치는 게 최고다.”
골프를 접한 지 40년 정도 됐다. 골프는 뭐라 생각하나.
“가끔 어떤 계기로 해서 직업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 쫓아가서 일찍 골프라는 걸 접했고, 그 덕분에 이 사업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골프 이즈 라이프’(Golf is life)라고 하는데 실제로 골프는 내 인생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어떤 코스를 좋아하나.
“아침과 해질녘 느낌이 다른 곳이다. 아침에는 새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이슬 맺힌 페어웨이를 걸을 때의 느낌이 좋고, 저녁에는 노을이 멋진 곳이 있다. 그런 골프장을 좋아한다. 또한 인위적인 곳보다는 내추럴하고 오래된 골프장을 좋아한다. 샤워 시설이나 이런 게 거창한 것보다 조금 낡았어도 오래된 클럽하우스에 더 마음이 간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너무 좋아한다.”
박 대표에게 스코틀랜드의 올드 코스들을 돌아봤냐고 물어봤다. 그는 안 그래도 기회를 만들어 가볼 참이라고 했다. “골프가 내 인생인데, 골프가 태어난 곳을 한 번쯤은 가봐야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