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타음 하나 그냥 떨어지는 건 없었다. 분명 건반을 두드리는 건 조성진의 열 손가락인데 건반마다 보이지 않는 실들이 연결돼 있어 강도를 수백 가지 이상으로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온전히 느끼기 위해 2500여명의 관객들은 온 감각을 동원했다. 지난 해 11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로 돌아온 조성진은 반년 만에 우아함이 더해지고 깊어졌다.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날 검은색 정장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진은 한층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연주할 때 드러나는 턱선이 웨이브를 넣은 머리 스타일과 대비돼 돋보였다.
2009년 처음 협연을 진행한 후 15년 차가 된 두 사람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탁월한 솔로이스트가 발휘할 수 있는 조화로움은 남달랐다. 정명훈이 이끄는 관현악과 주제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오보에 등 관악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마지막 악장에 이르러 주도권을 뺏어오면서 정명훈과 눈빛을 주고받을 때는 거목과 만난 재목이 거목의 반열로 올라서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마지막 음에 도달했을 때 관객들은 전율했다.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그가 고른 첫 앙코르 곡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하나인 ‘트로이메라이(꿈)’이었다. 관객들은 탄성을 참으며 침을 삼켰다. 스물여덟의 슈만이 클라라와 한창 사랑을 나누던 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들었던 곡을 이십대 끝자락에 선 조성진의 연주로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앙코르 곡을 듣는 정명훈과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꿈 속을 걷는 표정이었다. 2001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도쿄 필하모닉의 명예 감독을 맡고 있는 정명훈은 19년 만에 공식 내한 공연에서 처음 합을 맞춰 가던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선택했다. 특유의 짙은 회색 차이나 칼라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정명훈이 접었던 오른 쪽 다리를 두어 번 박차자 오케스트라는 일사분란하게 관객들을 이끌었다.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연주는 흔들림 없이 절도 있게 최선의 지휘를 하는 정명훈과 맞아 떨어졌다. 팀파니의 울림까지 표현하는 그의 몸놀림은 모든 걸 불사른 뒤에는 자신의 공연조차 다시 보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하게 했다. 거장과 동시대를 향유한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