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처분적 법률 조치까지 거론하면서 전 국민 25만 원 지급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야당의 주장은 지금의 경제 상황과 맞지 않고 경제학적 기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돈 풀기가 유효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는 긴축과 감세 조합이 적합하다는 얘기다.
8일 정치권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야당의 전 국민 25만 원 지급은 수요가 부족할 때 지출 확대와 적자 재정을 바탕으로 경기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 이론에 바탕을 둔 측면이 강하다. 민주당 내 경제통인 한 중진 의원은 “미국·유럽 등 주요국도 에너지 보조금 등을 통해 경기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며 “지금은 위축된 소비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이론과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민생회복지원금 추진의 명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주장은 ‘경제가 안 좋을 때’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보다도 높다”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의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야당의 생각은 아무 때고 재정 확대를 하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재정만능주의에 불과하다”며 “1980년대 고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이미 잘못됐음이 드러난 주장”이라는 말도 나온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부의 재정 긴축과 감세(유류세 인하와 일부 식품 부가가치세 한시 면제) 조합이 코로나19 이후의 물가 관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1.3%로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소비자 물가는 4월 기준 2.9%로 여전히 3%대에 근접하고 있다. 한은의 물가 관리 목표가 2%라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반면 코로나19 당시 현금 지급은 경제가 명확히 후퇴하고 물가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2020년 1분기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1.3%로 2분기에도 -3.0%를 기록했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인 것이다. 물가 역시 2020년 3월 전월비 -0.2%, 4월 -0.6% 등 하락세가 뚜렷했다. 2020년에 무려 66조 8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상황이 비슷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에도 28조 4000억 원의 추경을 했고 이때의 돈 풀기는 명분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재정 적자가 심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긴축 재정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실질적인 나라 살림 수준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3.9% 적자를 기록했다. 보통 이 비율이 3%가 넘으면 적자 수준이 크다는 뜻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재정수지를 보면 이미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라며 “재정수지 건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했다.
재정지출 확대가 실질 GDP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통 경제학계에서는 재정지출이 GDP에 미치는 효과를 볼 때 ‘승수효과’를 따진다. 정부 지출이 1원 늘 때 GDP는 얼마나 증가하는지 분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2020년 한은이 정부 지출 승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부 소비의 승수(재정지출 뒤 3년 평균)는 0.91에 불과하다. 정부 지출 증대가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져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기 상황에서는 전체 기조는 긴축으로 가면서도 감세를 통해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상당수 국민들은 앉아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 종합소득금액을 신고한 인원은 2018년 219만 명에서 2022년에는 427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상속세를 신고한 인원은 8449명에서 1만 9506명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