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코스가 길어지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는 자연스럽게 장타자 득세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가공할 장타 없이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선수는 꼭 있다. 이예원(21·KB금융그룹)이다.
이예원은 물샐 틈 없는 골프를 한다. 2년 차였던 지난 시즌 그린 적중률 4위, 페어웨이 안착률 11위, 평균 퍼트 13위의 고른 기량으로 상금왕·대상·최소타수상의 3관왕에 올랐다. 드라이버 샷 거리는 40위권이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점이 거의 없는 이예원의 골프는 올해 더 무르익었다. 12일 경기 용인의 수원CC(파72)에서 끝난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3타 차로 우승(13언더파 203타)하면서 시즌 초반 2승째를 달성했다. 그것도 1~3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전반기 2승과 와이어 투 와이어 모두 데뷔 후 처음 이룬 기록이다. 지난 시즌 3승으로 다승왕 타이틀(4승 임진희)만 놓쳤던 이예원은 올해 다승왕을 포함한 4관왕을 향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2위 이승연에게 3타 앞선 단독 선두로 나선 이예원은 3라운드에 버디만 4개를 잡아 두 달 만의 우승으로 통산 5승째를 올렸다.
이예원은 정확한 롱 퍼트 감각으로 전반에 버디만 3개를 잡으면서 같은 조인 2위 윤이나를 4타 앞섰다. 14번 홀(파4)에서 윤이나에게 15m 롱 버디 퍼트를 맞아 2타 차로 쫓겼지만 16번 홀(파3)에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린 옆 어프로치 샷을 너무 짧게 치는 실수로 6m 넘는 파 퍼트를 남기면서 이예원은 최대 위기를 맞았는데 이걸 넣어버렸다. 심한 내리막 경사에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까다로운 상황인데도 원 퍼트로 막은 것. 버디 같은 파 세이브였다.
이예원은 1주일 전 일본 투어 메이저 대회 살롱파스컵에서 당한 역전패의 아픔도 훌훌 털었다. 단독 선두로 맞은 최종일 보기 7개(버디 3개)로 4타나 잃은 끝에 3위로 마감했던 그다. “우승했다면 일본 투어 진출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내심 아쉬움이 컸을 텐데 후유증 우려를 보란 듯 씻고 주무대에서 곧바로 승수를 쌓았다. 일본에서는 최종일 강풍에 고전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승부처가 된 2라운드에 비바람을 뚫고 3타를 줄였다.
올 시즌 이 대회 전까지 이예원의 페어웨이 안착은 10위, 그린 적중은 13위, 평균 퍼트는 55위였다. 샷 감은 지난주 일본 대회를 계기로 쑥 올라왔고 퍼트는 예전 쓰던 퍼터를 최근 들고 나오면서 확 좋아졌다. 주요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달린 지난주 대회 우승자 박지영이 ‘박지영 천하’를 만들려던 참이었는데 이예원이 제동을 걸었다. 상금 1억 4400만 원을 보탠 이예원은 상금 3위, 대상 포인트 4위로 올라섰다. 다승은 박지영과 공동 1위. 평균 타수 부문에서는 황유민이 이븐파 공동 18위로 마친 박지영을 2위로 밀어냈다.
이예원은 “16번 홀은 티샷 미스가 나왔고 두 번째 샷도 공 있는 위치가 모래 바닥이어서 잘못 쳤다. 그래도 차분하게 마무리하자는 생각대로 파로 잘 막았다”며 “꼭 넣는다는 생각보다는 거리감만 맞춘다는 느낌으로 하니 퍼트가 나아지고 있다. 시즌 초반이니까 우승에만 집착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예원의 2022년 데뷔 동기인 윤이나가 중반부터 무서운 버디 행진을 벌이면서 경기는 1대1 매치플레이처럼 흘러갔다. 장타자인 윤이나는 9번 홀(파4)에서 드라이버 샷을 288야드나 보내기도 했다. 이예원보다 35야드나 멀리 친 것. 수원CC는 페어웨이가 길고 넓은 편이라 그린 전까지는 장타자 친화 코스다. 하지만 윤이나는 막판에 샷이 다소 흔들린 탓에 시즌 최고 성적인 단독 2위(10언더파)에 만족해야 했다. 황유민과 한진선이 7언더파 공동 3위이고 이승연은 3언더파 7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