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숨은 진주’라 불리는 서울 송파구 풍납미성아파트가 이례적으로 정비구역 지정 전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심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국가지정문화재인 풍납토성 내부에 자리한 데다가 주변 필지들이 그 자체로 사적인 만큼 문화재 심의가 재건축 과정의 최대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한 조치다. 풍납미성아파트는 풍납토성 내부 아파트 중 처음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라는 점에서 현상 변경 허가를 얻을 시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정비업계·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8일 풍납미성아파트의 문화재 현상변경에 대한 3차 심의를 열고 현재 재건축 계획의 최고 층수를 낮추라는 취지에서 ‘부결’ 결정을 내렸다. 이 단지는 1985년 준공된 4개 동, 11층, 275가구 규모 아파트로, 지난해 6월 송파구청에 정비계획 입안 신청을 하며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1호인 풍납토성 내부에 있어 주목을 많이 받진 않았지만 용적률이 167%로 낮은 데다가 한강과의 거리도 200m 정도로 가까워 ‘알짜 단지’로 꼽힌다. 앞서 1·2차 심의에서는 문화재 위원들의 현장 조사와 자료 보완 요청이 이뤄졌다.
추진위 관계자는 “위원회의 심의 결과대로 정비계획을 조정해 6월에 4차 심의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계획은 제2종일반주거지역인 용도지역을 유지하면서 법적 상한 용적률이 250%인 점을 감안해 풍납미성아파트를 5~8개 동, 최고 27층 혹은 29층, 400여 가구로 재건축하는 것이었지만 최고 층수를 27층 미만으로 낮출 예정이다. 추진위는 현상변경 허가 이후 정비구역 지정, 재건축 조합 설립 등의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문화재와 인접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도 전에 문화재 현상변경 심의를 받는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보호구역의 100m(서울 기준) 이내에서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발 행위를 하려면 현상변경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이 절차는 통상 조합 설립 후 진행된다. 추진위 관계자는 “문화재 심의로 인한 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풍납토성 보존·관리 계획에 따라 백제문화층이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 내부 토지와 주택을 매입해 사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정 규모는 지난해 10월 기준 1517개 필지, 41만 527㎡ 면적에 달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 조례상 문화재 보호구역의 경계선 지점 높이로부터 27도 선을 그어 모든 건물 높이가 그 아래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앙각 규정을 엄격히 지키면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앙각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얻는 것이 재건축의 필수 요건인 셈이다.
만약 풍납미성아파트가 문화재 심의의 벽을 넘으면 풍납토성 내부 아파트 중 처음으로 재건축 물꼬를 트게 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풍납토성 내부에는 동아한가람(1995년, 782가구), 한강극동(1995년, 895가구), 씨티극동(1998년, 442가구) 등 재건축 연한(30년)이 도래하는 아파트가 많다.
문화재위원회도 풍납토성 보존과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방안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 도심에는 문화재 규제로 인해 개발이 막혀 있는 곳이 많다”며 “앙각 규제 같은 제도들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각 지역 특성에 맞춰 층수를 제한하는 식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