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후 일본은 조선을 문화정책으로 지배한다. 그후 10년이 되지 않아 ‘황성옛터’(1927 발표)가 등장한다. 총독부는 1933년 '축음기 레코드 취체규칙'을 제정한 후, 황성옛터’(1932 출반)를 포함한 음반 넉장을 판매 금지한다. 이 합법적 처리는 문화통치가 얼마나 정교했었나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황성옛터’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는 왕조를 일본에 바치고 년봉을 받았던 고종을 연상케 한다. ‘나그네 설움’(1940)의 시작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 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를 오늘의 젊은 세대가 듣는다면 실연의 연가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국 한탄의 노래였다.
‘눈물젖은 두만강’(1938)도 같다. 1절의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나 3절의 “떠나간 그 님이 보고 싶구나.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에서 “그리운 내 님”은 사라진 왕조였을 것이다.
8·15 후 이런 비유는 사라진다. 사건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방랑시인 감삿갓’(1955)이 그렇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가 그렇다. ‘눈물젖은 두만강’(1938) 후 40년을 넘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심수봉의 육성으로 ‘그때 그 사람’(1978)을 듣는다. 가사를 읽어 보자.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a
그 어느 날 차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a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 B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a
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사람 B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 되겠지/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철없이 사랑인줄 알았었네/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a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가사 옆의 “a”는 멜로디가 같지만 가사가 변화된 경우이고, “B”는 멜로디와 가사 모두가 같은 경우를 지칭한다. 가사가 다르면 소문자, 같으면 대문자로서 노래의 형식을 표시하는 음악학의 기호다. 이 노래에서 “B”는 가사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렇게 기호화하면 이 노래는 “a a B, a B a”로 그 형식을 표시할 수 있다. 형식 이해는 가사와 멜로디 암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때 그사람’의 가사는 잘 외워지지 않고 멜로디의 반복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사의 내용이 수시로 점프(jump)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게 뭐냐고”에 직접 대답하지 않는다. “사랑보다 더 슬픈건 정이라며” 대답을 우회한다. 가사 점프의 시작이다.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를 듣고 나면, 보통 “언제. 어떻게 떠났나”를 기대한다. 문법적으로는 거의 필연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로 튀어버린다. 이어지는 기대는 “누구와 행복할까”이겠지만, “어쩌다 한번쯤은 생각해줄까”로 튄다. 노래의 끝도 점프로 끝맺는다.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그사람”은 “그립다, 보고싶다”로 이어지기를 요구하지만, 한번 더 벗어난다. 긍정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 되겠지,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대중가요를 즐겨 들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0·26 사태가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이 노래를 그가 죽음의 자리에서 들었다는 사실은, 가사에 대한 그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자신의 서거를 미리 느꼈을까. 그에게 “그때 그사람”은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영부인이었까. 가사를 다시 적어본다. 괄호 안은 대통령의 속 마음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그날 비는 오지 않았어)
그 어느 날 차안에서 내게 물었지 (무언가를 물었던 적 있었지)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그렇지)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병실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하늘에서?)
어쩌다 한번쯤은 생각해줄까 (생각하겠지)
살며시 다가와서... 다정했던 사람 (그랬었지)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 되겠지 (미워한 적 있었지, 미안해)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경제 발전”을 위해)
5·16을 60년, 10·26을 40년 넘긴 지금, “그때 그 사람”. 우리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일 것이고, 그에게는 육영수 여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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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