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6일 경기도 이천의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는 생소한 충돌 실험이 진행됐다. 통상 연구소는 출시 전 신차와 판매 중인 여러 차종의 충돌 실험을 주로 진행한다. 충돌에 따른 자동차 수리비의 적정성, 모델별 보험료율 책정을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은 자동차가 평소(시속 40㎞)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움직이며 충돌 실험이 진행됐다. 차량의 파손이 아니라 저속으로 차량이 부딪혔을 때 탑승한 사람이 얼마나 다치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실험은 준대형 차량이 시속 5㎞의 속도로 소형 차량 좌측 뒤 범퍼에 20도의 각도로 충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운전석에는 사람을 대신해 더미 인형이 탔다. 보험개발원은 “충돌 시 피해 차량의 속도 변화는 시속 1.7㎞에 불과했다”며 “상해 위험 판단 기준 속도 변화값인 시속 8㎞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만큼 피해 차량 탑승자는 상해 위험이 거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사람에게는 영향이 없는 충돌에서 차량은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을까. 실험 결과 피해 차량(소형)은 뒤 왼쪽 범퍼에 경미한 손상이 있었는데 도장이 불가능해 범퍼를 교체해야 했다. 또 뒤 펜더 몰딩(바퀴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싼 철판과 고무 등이 덧대어진 부분)에 긁힌 자국이 생겼다. 총수리비는 약 33만 원. 가해 차량은 우측 앞 범퍼에 손상이 있었고 헤드램프가 약간 긁혔다. 앞부분 펜더에도 경미한 손상이 있었다. 수리비는 60만 원 정도였다.
연구소가 이런 실험을 하는 것은 ‘뒤 쿵’과 같은 초저속 충돌에서 경미 환자들의 과잉 진료와 이에 따른 보험금 청구가 적정한지 근거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실시한 실험 역시 2020년 8월에 있었던 실제 사고를 재현한 것이다. 당시 이 사고에서 피해 차량 탑승자는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고 500만 원의 합의금도 요구했다. 과학적 실험에 근거해서 보면 사고 피해자가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구소의 실험 결과는 진료비 심사에 참고로는 사용될 수 있지만 실제 피해자의 요구를 거부할 결정적인 근거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나이롱환자(상해를 과장해서 보험금 등을 받아가려는 환자)’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실험 결과를 심사 근거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이미 해외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공학적 분석 결과를 경미 환자 진료비 심사에 활용하고 있다”며 “소비자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