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보세요. 두께가 종잇장 같죠?”
장인이 내민 소가죽은 억세고 질겼던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얇았다. 두꺼운 가죽을 원하는 만큼 칼로 깎아내는 ‘피할’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표면만 남기고 얇아진 가죽 조각을 여러 겹 덧대 말안장이 만들어진다. 두꺼운 암소 가죽 ‘카우하이드’부터 가장 얇은 송아지의 ‘카프스킨’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예외는 없다.
이어서 날카로운 가죽 단면을 사포로 문질러 둥글게 다듬어내는 장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다. 갈려 나간 가죽 알갱이가 그의 손길을 따라 양 옆으로 흩날린다. 이렇게 한 명의 장인이 달라붙어 말안장 하나를 온전히 수작업으로 생산해낸다. 제작 과정에 분업도 자동화도 없는 건 이 말안장이 다름아닌 ‘에르메스’ 제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 이곳에 열린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은 장인들의 작업 과정과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다. 주인공은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을 찾은 11명의 장인들이 27일까지 머문다. 이들이 관람객의 질문에 답해 가며 가죽 제품을 만들고 수선하는 특유의 수작업 과정을 보여준다. 한명 한명이 가죽 그레인(알갱이)의 크기만 만져 봐도 그 종류를 맞춰 내는 전문가들이다. 다른 명품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는 에르메스의 ‘보물’인 셈이다.
에르메스의 역사는 18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구(馬廏) 용품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 공방이 지금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브랜드가 됐다. 이 때문에 말안장과 가방만큼은 모든 제작 과정에서 수작업을 고수한다.
전 공정에 장인 정신이 담겨 있다. 한 명의 제작자가 시작부터 끝까지 제품 하나의 작업을 온전히 도맡는다. 완성된 제품에는 장인의 인장이 찍힌다. 현대까지도 이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런 작업은 유럽 내에서도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이뤄진다. 가죽 제품은 아예 전부가 이 나라에서만 생산된다. 프랑스에 보유한 60개의 공방을 지금도 매년 1개씩 늘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연 곳은 280명이 근무하는 작은 작업장이다.
브랜드 정체성 그 자체인 장인들의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2021년 9월에는 프랑스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에르메스 기술 트레이닝 센터’도 열었다. 국내에도 수선을 담당하는 장인 2명이 상주한다.
드 센느 에르메스 부회장의 말에 이런 의지가 잘 드러난다. “우리의 성공은 장인 정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에르메스가 만들어낸 특별한 노하우와 가치를 표현하는 존재입니다”
명품 중에서도 특히 ‘콧대 높은’ 에르메스가 국내에 연 이 전시는 소비자들에게 낯설게 인식될만 하다. 다만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지금의 규모와 형태를 갖춘 건 2021년부터다. 이번에 열린 전시는 글로벌 열 번째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와 교토에 이어 서울이 낙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