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경우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보다 채권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감세 전략이 미국 재정적자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빌 그로스는 F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속적인 감세와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정책을 옹호하기에 후보들 중 (경제 정책에 있어) 열세에 있다”며 “그의 당선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그로스의 발언이 유세 현장에서 “경제는 내가 더 낫다”고 자신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로스는 1971년 글로벌 채권 운용사 핌코를 공동창업해 세계 최대의 채권운용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로스는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공약을 문제로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경제 계획 중 하나는 2017년 감세를 영구화하겠다는 공약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법을 개편해 법인세율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춘 바 있다. 예산 감시 단체인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는 이 정책이 앞으로 10년 동안 4조 달러(약 5466조 원)의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 상반기 유세 과정에서 재집권할 경우 현 법인세율을 15% 수준까지 인하하고 개인 소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미국 재정적자가 더욱 심화해 채권 시장 역시 요동칠 것이라는 의견도 말했다. 앞서 그로스는 직접 고안해 자신을 ‘채권왕’으로 만들어준 ‘토탈 리턴' 전략에 사망 선고를 내린 바 있다. 토탈 리턴은 채권에 따라붙는 이자 수익을 수동적으로 얻는 것을 넘어 채권 가격 변동에 따른 자본차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총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로스는 2일 정부의 부채 남발과 그에 따른 재정적자로 장기 국채 가치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토탈리턴은 죽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전략을 처음 선보였던 1980년대와 비교해 지금 국채수익률은 너무 낮고 장기 듀레이션은 몹시 길어졌으며 무엇보다 정부 국채 발행 물량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풀어 오를 예정”이라며 채권 투자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FT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재정 적자는 GDP의 8.8%를 차지했다. 2022년 기록인 4.1%의 두 배 이상이다. 그로스는 인터뷰에서 “적자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연간 2조 달러의 채권 공급 증가가 시장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증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로스는 “투자자들이 올해도 지난해 S&P 500의 수익률인 24%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눈높이를 낮출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