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로터리] 규제 '파르마콘'

이인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이인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사진 제공=한국무역협회이인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사진 제공=한국무역협회




‘미국이 만들면 중국이 복제하고 유럽연합(EU)은 규제한다(America innovates, China duplicates, EU regulates)’라는 격언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한 풍자다.

우리는 미국과 EU의 중간쯤 될 것 같다. 열심히 창조하고 또 규제한다. 혁신과 규제가 공존하는 아이러니는 업종과 규모·분야를 불문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니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가진 출력을 모두 쓸 수가 없다.



이번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뛰는 것’에 비유하며 킬러 규제 혁신을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약속대로 현장은 규제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는 물론 범부처 기관인 원스톱수출수주지원단도 상시 애로를 접수하고 현장 방문을 통해 업계의 의견을 듣는다.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도 앞다퉈 규제·애로 해소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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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은 여전히 규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왜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걸까.

원인을 규제영향평가 제도와 감독 기구 부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 발의 법안은 규제영향평가를 거치지 않고 입법할 수 있어 새로운 규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 법조문 한 줄로 희비가 엇갈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교한 사전 영향평가가 꼭 필요하다. 기업 활력을 저해하는 과잉 규제 예방을 위해 사전 규제영향평가 제도를 법안 발의 주체 구분 없이 적용해 규제심사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관리·감독할 독립적인 규제 감독 기구 설치도 검토해볼 만하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약학 용어 파르마콘(pharmakon)은 약(藥)과 독(毒)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규제도 파르마콘과 같아 환경·노동·공정과 같은 사회적 가치는 지키고 기업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는 신중한 처방이 필요하다.

이달 30일 제22대 국회가 개원한다.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 연장부터 글로벌 최저한세 개선, 기업승계 과세특례 확대 등 규제 개선 및 기업지원을 위한 법안이 국회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는 반도체와 2차전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패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규제 혁신을 통해 미래 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경쟁력 있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입법 지원을 기대한다.


노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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