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발목을 잡은 지 이미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라도 서초구가 족쇄를 끊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이미 쿠팡·컬리 등 e커머스로 기울어진 새벽배송 시장에서 마트가 승산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업계의 한 관계자)
27일 서울 서초구가 12년 만에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늦었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 채널 간의 규제 형평성 제고와 소비자 편익 증진을 위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곧바로 새벽배송을 시작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사업성 검토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서초구가 절차를 거쳐 7월에는 영업시간 제한 변경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시일을 못 박았음에도 대형마트가 선뜻 새벽 배송에 나서겠다고 밝히지 못하는 것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새벽배송 시장의 판도와 대형마트의 사업 효율성 등을 고려할 때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바로 새벽배송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새벽배송을 포함하는 국내 e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2022년 기준 쿠팡이 24.5%, 네이버 23.3%, 신세계(G마켓·SSG닷컴·옥션) 11.5%, 롯데온이 4.9%를 차지하고 있다. 새벽배송만의 점유율의 경우 따로 업계가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업계는 쿠팡과 컬리 등이 80~90%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2012년부터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대형마트의 영업을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제한했지만 그 결과 뜻하지 않게 온라인 유통 채널이 급성장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쿠팡과 컬리 등이 ‘규모의 경제’를 이룬 새벽배송 시장에 제 아무리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뛰어들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2010년 설립된 쿠팡이 새벽배송 시장 등에서 지금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10년 넘게 적자를 감수하면서 물류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입한 자금이 6조 원이 넘는다”며 “2015년 출발한 컬리도 올해 1분기에서야 겨우 흑자 전환할 정도로 새벽배송은 만만치 않은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인 만큼 대형마트는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초구에서 양재점을 운영하는 이마트(139480)의 경우만 보더라도 새벽배송을 한다면 SSG닷컴 새벽배송과 중복을 피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SSG닷컴은 용인·김포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인 네오(NEO)센터 3곳을 구축하고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이미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 서초점과 롯데슈퍼·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서초구 내 준대규모 점포 등은 새벽배송 도입 여부 및 시점이 미정인 상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번 서초구 영업시간 제한 완화는 대형마트를 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이나 홈플러스는 서초구에 익스프레스만 7곳이 있고 대형마트는 없다”며 “앞으로 마트 영업시간 제한 완화가 다른 지역에서도 시행될 경우 해당 지역의 시장 상황과 차량·인력 운영 방안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새벽배송 시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는 지방자치단체별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며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상당수의 국민들이 새벽배송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온 만큼 새로 열리는 22대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기대한다. 대한상의는 최근 6개월 내 온라인 장보기 경험이 있는 만 20~59세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6%가 찬성 입장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용자가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이유(복수 응답)는 ‘늦게 주문해도 일찍 수령(77.6%)’ ‘번거로움 감소(57.6%)’ ‘장 보는 시간 절약(57.6%)’ ‘정시에 정확하게 배달(33.2%)’ 등이 꼽혔다.
업계 관계자는 “서초구 등 특정 지역이 아닌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대형마트와 슈퍼의 새벽배송 열어주면 지금까지 쿠팡·컬리 등을 이용했던 소비자도 대형마트 채널을 찾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아직도 신선식품의 경우 대형마트가 가장 싸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직접 가서 사는 소비자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