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맹주인 독일과 프랑스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해빙 무드를 보이고 있다. 양국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유럽의회 선거가 바짝 다가오면서 유럽 내 분열 양상이 심화하자 양국 정상 명의로 ‘강한 유럽’을 위한 정치적 의제를 내놓으며 결속을 촉구하고 나섰다.
2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마크롱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공동으로 작성한 ‘우리는 유럽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를 공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전날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독일을 국빈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기고문이다. 양국 정상은 “유럽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침략 전쟁, 지정학적 변화 등과 맞물려 중대한 변화의 시기에 직면해 있으며 도전에 맞서지 않으면 필멸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의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 도전에 대응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미래의 시장과 산업, 좋은 일자리라는 공통의 야망에 부응하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는 EU가 더 많은 혁신, 더 많은 단일 시장, 더 많은 투자, 더 공평한 경쟁의 장, 더 적은 관료주의가 필요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을 통해 EU의 주권을 강화하고 미국 등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들은 민간과 공공을 아우르는 공동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시장동맹(Capital Markets Union)’을 공론화한 셈이다. 자본시장동맹은 유럽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강력한 ‘단일 시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2015년 처음 제안됐다가 회원국 간의 이견으로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드레스덴 성모교회 광장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유럽 공동 방위 체계를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하거나 미국만 바라보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유럽의 진정한 통일 혹은 통합은 우리가 스스로 국방과 안보의 틀을 확립할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순진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호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유럽식 규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에 대한 대응 방안 및 우크라이나 지상군 파견 여부를 놓고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양국은 “지난 수십 년간 프랑스와 독일은 함께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번 국빈 방문은 양국 간 우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등의 의미를 부여하며 결속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유라시아 그룹 싱크탱크의 유럽 담당 전무이사인 무즈타바 라흐만은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시도”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