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이어진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주식에 ‘빚투(빚내서 투자)’ 하신 분들은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2800선을 뚫고 올라갈 줄 알았던 코스피 지수가 지난달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국내 신용거래 융자 규모가 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코스피는 지난해 연말 종가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빚투족’ 중에서 누가 울고 웃었는지, 빚투가 왜 위험한지 다뤄보겠습니다.
신용거래융자 ‘20兆’원 눈앞…작년 9월 이후 최대
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9조 7568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9월 27일 19조 7029억 원 이후 최대치인데요. 신용융자 잔액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매수(신용거래)한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합니다. 잔액 규모가 커질수록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선 이들이 많다는 의미죠.
신용융자 잔액은 작년 7~8월 20조 원을 넘어섰다가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가 단속에 나서면서 급감했는데요. 작년 11월에는 16조 원대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에는 17조 원, 2월에는 18조 원을 넘어서더니, 3월부터는 19조 원대로 올라섰죠. 4월에는 주춤하나 싶더니 지난달 들어서는 다시 느는 모습입니다.
금리 인하, AI 종목 상승 기대감에…“빚내서라도”
투자자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한 이유는 크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실적 호조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지난해 12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 종결을 시사하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요. 1월까지만 해도 미국 월가에서는 연준이 올해 금리를 3번 인하할 거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실물 경기가 고금리 기조에도 건실한 성장을 보이면서 4월에는 2번으로, 지난달부터는 1번 혹은 0번으로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거기다가 지난 2월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발표에, 국내 증시에서도 AI와 반도체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훈풍이 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2월 22일 작년 11월~올해 1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5% 성장했다고 발표한 이후 주가가 최근(5월 31일 기준)까지 62.43% 상승했습니다. 이 덕분에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납품하는 SK하이닉스(000660)를 필두로 반도체→반도체 후공정→전선→전력설비→반도체 소재 및 구리 등 종목들로 옮겨가며 주가 상승 랠리가 이어졌죠.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 아마존 등 미국의 빅테크들이 앞다퉈 짓고 있는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보다 몇 배나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빚투’ 올해 들어 삼전 4002억, 하닉 1070억원
그 여파로 빚투도 특히 반도체 종목에 가장 많이 집중됐습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29일 기준 삼성전자(005930)의 신용융자 잔액이 6807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가 5034억 원, 셀트리온(068270)이 3840억 원, 포스코퓨처엠(003670)이 2814억 원, SK하이닉스가 2496억 원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반도체 ‘2톱’에만 1조 원가량의 빚투가 몰린 셈이죠. 코스닥에서는 에코프로비엠(247540)(2528억 원), 에코프로(086520)(2000억 원), 삼천당제약(000250)(1351억 원) 순으로 신용융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증가한 신용융자 잔액은 삼성전자가 400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042700)도 각각 1070억 원, 867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는 HPSP(403870)(615억 원)와 이오테크닉스(039030)(449억 원)도 순증감액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뒤늦게나마 AI 랠리에 뛰어들어 한몫 챙기려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보입니다.
외국인 2.7조 매도 폭탄에…삼전 올해 마이너스 6%
빚투가 늘었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종가 대비 지난달 31일까지 주가가 6.37% 떨어졌습니다.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의 이탈이 직격탄이 됐죠. 외국인은 최근 지난달 24일부터 31일까지 6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이며 이 기간 총 2조 7224억 원어치를 팔아치웠습니다. 특히 30일에는 4917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난해 7개월 이후 최대치를 내다팔았죠. 4월 초까지만 해도 하루에 1조 원을 넘게 순매수했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각각 33.71%, 162.07%의 수익률을 보였습니다. HBM 등 엔비디아의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가 빚투족의 운명을 갈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민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여전히 HBM 공급 부족이 예상되고, 미국 리쇼어링 정책과 AI산업의 개화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HBM 공급망(엔비디아–TSMC/인텔-SK하이닉스/마이크론–한미반도체) 합류는 큰 프리미엄을 유발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럼에도 섣부른 ‘장밋빛 미래’는 금물입니다. 기준금리 인하의 향방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AI 반도체 ‘고점론’도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금리를 다시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죠. 자세하게는 오는 12일 공개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들여다 봐야될 것 같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최근 채권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면서 “미국 금리 인하 시점과 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동안 코스피의 강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