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여명]개혁 훼방꾼, '부자감세 프레임'

이상훈 투자증권부장

상속세 공제한도 28년째 10억 '요지부동'

부자 의존 크지만 과세제도 현실과 달라

금투세 폐지, 부자 아닌 개인 위한 조치

세제 개혁으로 시대착오적 세금 없애야

이복현(왼쪽) 금융감독원장은 금투세 폐지가 증시 발전에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최근 한 금투 업계 세미나에 참석한 이 원장. 연합뉴스이복현(왼쪽) 금융감독원장은 금투세 폐지가 증시 발전에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최근 한 금투 업계 세미나에 참석한 이 원장.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부자(富者) 과세 국가다. 상위 0.01% 기업이 납부하는 법인세가 전체의 40%(2022년 기준) 남짓이다. 한미약품의 위기를 부른 상속세는 최고세율이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에 이른다. 한국은 세금의 부자 의존증이 그 어떤 곳보다 심한 나라다.



문제는 우리의 과세 시스템이 현실 반영을 제대로 못하면서 국가적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이 일자리 원천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감세는 물론 보조금까지 퍼주는 등 난리법석이지만 우리는 세액공제만 깨작거리는 상황이다. 또 부(富)의 이전을 통한 소비 진작, 원활한 가업승계, 고갈 위기에 직면한 공적연금과의 시너지 등을 염두에 두고 상속세나 재산세를 과감하게 정비하는 추세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 마치 조자룡 헌 칼 쓰듯 남용되는 논리가 바로 ‘부자 감세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너무나 강력하다. ‘감세’의 ‘감’자만 꺼내도 이 프레임만 갖다 대면 다 수포로 돌아간다. 갑갑한 것은 부자 감세 프레임이 잘못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일단 부자를 겨냥한다고 하지만 ‘영점 조정’조차 제대로 안 돼 있다.

가령 과표와 세율이 24년째 요지부동인 상속세의 공제 한도는 28년째 10억 원이다. 서울 강북에 있는 아파트 1채만 물려받아도 상속세를 낼 판이다. ‘인플레이션 증세’를 고스란히 감내한 결과 너도나도 부자로 떠밀려 격상되는 나라가 됐다.



‘찐’ 부자가 아닌 ‘허울’뿐인 부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상속세만이 아니다. 1996년 이후 두 번(2008·2022년)만 과표가 소폭 오른 소득세,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도 이중과세와 징벌적 과세 논란이 비등한 종합부동산세도 부자 양산 세금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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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감세 프레임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고질적 병폐다. 요즘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금융투자소비세의 내년 시행 여부다. 아시다시피 금투세는 주식·펀드 등 금융투자로 연간 수익이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금의 22~27.5%를 세금으로 원천징수한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 더불어민주당은 원칙대로 내년에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논리가 가관이다. 금투세를 시행하지 않으면 1조 30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부자 감세에 따른 재정 부실을 초래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1인당 25만 원 수준의 민생지원금 지급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게 민주당이다. 여론 악화에 인당 차등 지원으로 한 발 물러섰다지만 1인당 25만 원이면 13조 원이 든다. 1조 3000억 원은 ‘부실 재정’을 낳고 13조 원은 ‘건전재정’을 유인한다는 편의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아전인수식 해석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부자 감세에 예민한 듯해도 한국 사회의 ‘부인지 감수성’은 너무 떨어진다. 이는 금투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금투세는 차별 세금이다. 개인에게는 금투세를 물리지만 외국인투자가와 법인은 예외다.

특히 ‘초’부자만 가입한다는 사모펀드(최소 투자금액 3억 원)는 금투세가 시행되면 수익에 따른 최고세율이 49.5%(금융소득종합과세 적용)에서 27.5%로 줄어드는 길이 열린다. 개인이 법인이나 사모펀드보다 더 부자라, 금투세 폐지가 부자 감세인가.

더구나 금투세는 양도소득세 적용 시 장기 보유에 따른 특별공제 혜택도 없다. 부동산과 다른 역차별이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 진입하면서 투자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인해야 할 판에 주식 장기 투자에 인센티브는커녕 사실상 페널티를 주는 이런 금투세는 부인지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세금으로 볼 수 있다.

유물(遺物)적 세제, 시대착오적 세금도 부지기수다. 주식을 거래하는 ‘부자’들이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른 농산물 개방으로 힘든 농어민을 돕는다는 취지의 농어촌특별세 때문에 ‘존재해야만’ 하는 세금이 된 증권거래세, 차(車)를 사치품으로 규정한 개별소비세 등이 그런 사례다. 모처럼 만에 세제 개혁에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는 지금, 개혁 훼방꾼인 부자 감세 프레임을 이참에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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