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후폭풍이 지속되고 있다. 경찰의 사건 처리 기간 등 표면적인 수치는 개선됐지만 검찰과 경찰이 서로 책임 소재를 떠넘길 수 있는 구조 탓에 국민들이 입는 수사 지연 등에 따른 피해는 더욱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수사 부서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올해 5월 기준 59.1일로, 수사권 조정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2022년 3월 74.3일 대비 20.5% 감소했다.
하지만 표면적인 수치 개선과 달리 일선에서 체감하는 수사 지연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졌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사가 경찰에 보완 수사 요청을 할 경우 사실상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되고 새로운 사건으로 분류돼 사건 번호도 새로 생성된다. 이 때문에 ‘일단 사건을 넘기고 보자는 식’으로 검경이 구조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탓에 실제적인 수사 지연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형사사건 전문 A 변호사는 “수사 지연이 문제된 후 ‘어차피 보완 수사 요구가 내려올 것이니 일단 처분하자’는 생각을 가진 경찰관들이 많다”고 말했다.
책임 떠넘기기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개정 검경 수사준칙에 의하면 ‘검사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에 대해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직접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미 3년여간 자리 잡은 수사권 조정을 방패로 ‘기계적인 보완 수사 요구’를 내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한 사건 수는 2021년 8만 7173건에서 지난해 9만 9888건으로 14.5% 증가했다.
부장검사 출신 B 변호사는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단순한 건에 대해서도 보완 수사 요구를 한다”며 “경찰-검찰-경찰을 왔다갔다 하면서 사건이 장기화된다”고 꼬집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이날 변호사 772명을 상대로 조사한 ‘2023년도 사법경찰평가’에도 ‘수사 지연’ 사례가 다수 발표됐다. 대표적으로 5억 원 이상의 횡령 사건을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려 검찰에서 보완 수사 결정을 했으나 2년이 넘게 수사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사례가 접수됐다. 또 “(담당 경찰관이) 자신의 허락 없이 추가 고소를 했다고 화를 냈다” “고발장을 접수하려 하자 무고죄의 책임을 묻는 등 접수 반려를 종용했다” “고소인과 마찰을 일으키는 등 어떻게 해서든 다른 경찰서로 사건을 보내려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외에도 피의자를 모욕 주기 위한 반말, 조롱 등의 강압적 수사 진행, 유도신문 반복과 같은 피의자의 방어권 및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수사 사례도 다수 나왔다. 서울변회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2021년부터 사법경찰에 대한 건전한 감시와 견제 활동을 위해 사법경찰평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책임 수사 약화 지적에 대검찰청은 올해 10월 도입되는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 검경 간 사건 처리 이동 내역을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할 예정이다. 킥스는 검찰·경찰·해경 등이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와 문서를 연계해 공동 활용하게 하는 전자 업무 관리 체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