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8일로 예정된 대한의사협회의 집단 휴진에 의대 교수들이 속속 가세하는 데 이어 ‘빅5’로 불리는 대형 상급병원을 중심으로 무기한 휴진 결의가 확산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참여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당장 진료를 앞둔 환자들은 불안을 호소하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이날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과 의료현안 대응을 위한 연석회의를 연다. 의협이 오는 18일 집단 휴진과 전국의사총궐기대회 개최를 선언한 상황에서 의료계 내부 단일대오를 다지고 이후 계획 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서울대병원은 이달 17일, 연세세브란스는 이달 27일부터 무기한 휴진하기로 결의했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의대 교수 비대위는 우선 18일 하루 휴진하고, 정부의 대응을 지켜본 후 내주 무기한 휴진 등 추가 행동을 논의하기로 했다.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미 추가 휴진에 관한 내부 설문조사를 마치고, 정부의 태도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협이 주도하는 18일 휴진에도 아산병원·성모병원 등 빅5 병원과 적지 않은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소속 의대 교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한국폐암환우회 등 6개 단체가 속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2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휴진 철회를 요구하며 의사에 대한 고소·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 회장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의사 집단을 더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법과 원칙에 입각해 의사 집단의 불법 행동을 엄벌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의사들의 행동은 조직폭력배와 같다”며 “이들의 학문과 도덕과 상식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식도암 4기 환자인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다른 대형 병원 교수들도 휴진을 선언할 분위기인데 의협의 전면 휴진도 맞물려 중증 질환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환우들이 왜 의료법을 위반하고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들을 고소·고발하지 않느냐고 전화한다”며 “지금까지는 고소·고발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만약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얘기를 하면 (단체 차원에서) 검토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변인영 한국췌장암환우회 회장은 “당신들이 지켜야 할,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죽어가고 있다”며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가도 참고 숨죽여 기다렸지만 그 결과는 교수님들의 전면 휴진이었고 동네 병원도 문을 닫겠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17일부터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체 휴진에 들어감에 따라 진료과 4곳 이상이 휴진에 나서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의사들을 비판하는 일반 직원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분당서울대병원 건물 노동조합 게시판에는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올라왔다. 붉은 배경의 대자보 상단에는 ‘의사 제국 총독부의 불법 파업 결의 규탄한다’는 문구와 함께 의사들이 지켜야 할 윤리를 담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 글귀가 게시됐다. 대자보를 읽던 한 고령의 환자는 “(의정 갈등) 사태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며 “정부·교수·직원 다들 각자의 입장이 있을 텐데 환자들의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잘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