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인도네시아 배터리셀 합작공장인 ‘HLI그린파워’가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자원 등으로 보급형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수년 전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지역에 애정을 쏟고 있는 데다 보급형 전기차 시장까지 확대되면서 HLI그린파워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21일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보급형 전기차 EV3와 EV4에는 HLI그린파워에서 생산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탑재된다. 3000만~4000만 원대 중저가 모델의 가격을 맞추기 위해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는 업계의 예상을 뒤엎는 결정이다. 실제 중저가 차량에 속하는 기아 레이EV는 중국 CATL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기아 니로 EV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의 국내 판매용 차량은 CATL의 NCM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다.
EV3에 탑재된 배터리에는 기존 흑연계 음극재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리콘 음극재가 사용됐다. 실리콘 음극재는 무게당 용량이 높아 흑연계 음극재보다 배터리 성능이 좋고 충전 시간도 짧지만 값비싼 가격 때문에 상용화에 일부 어려움이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흑연보다 값비싼 실리콘 음극재를 사용하면서도 보급형 전기차에 탑재될 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압도적인 니켈 생산량이 HLI그린파워 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을 만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 광물인 니켈의 세계 1위 생산국이다. 2020년 77만 톤을 생산한 인도네시아는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175만 톤의 니켈을 쏟아내면서 전 세계 생산량의 47%를 차지했다. 예상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니켈이 생산되면서 니켈 가격이 떨어졌고 이와 함께 배터리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도네시아의 값싼 인건비도 생산 가격을 낮추는 핵심 요인이다. HLI그린파워가 위치한 인도네시아 카라왕 지역의 최저임금은 한국의 2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용 전기료도 한국보다 저렴하다. 법인세 감면, 부가가치세 및 관세 면제 등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도 한몫한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현재의 공장 인근에 20GWh 규모의 두 번째 공장을 증설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완공 시 HLI그린파워의 생산능력은 총 30GWh로 전기차 45만 대에 탑재되는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년 전부터 정 회장이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핵심 거점으로 점찍어둔 시장이다. 일본 일변도였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의 판도 변화를 모색하고 전기차 공급망 안정화를 꾀한다는 목표였다.
정 회장은 2018년 총괄수석부회장에 오른 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4년간 여섯 번이나 만나면서 공을 들였다. 정 회장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이 정도로 빈번히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정 회장은 2022년 동남아 최초의 생산기지(HMMI)를 완공한 뒤 지난해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HLI그린파워를 세웠다. 정 회장은 최근에도 “인도네시아는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며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이 상이한 보조금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의 가격을 한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정확히 비교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다만 분명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HLI그린파워의 배터리가 이후에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대중화 도전을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