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는 7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 황해도 사리원 태생으로 월남한 장병희·최기호 창업주는 1949년 영풍기업사를 함께 창업한 후 약 반세기 동안 기업을 공동경영했다. 2세 경영이 시작된 1990년대에는 영풍을 장형진 회장이, 고려아연을 최창걸 회장이 경영하는 구조가 됐지만 양측이 영풍 지분을 20% 중반으로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공동경영 기조를 이어갔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3세 경영이 본격화된 2020년대 들어서다.
경영권 분쟁의 발단에 대해서는 양 측 시각이 부딪히고 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각종 유상증자를 통해 우군 지분을 늘리며 동업자 정신을 해치고 독립 경영을 시도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 측은 ‘과거 공정거래법 이슈로 영풍이 순환 출자를 해소할 때 일체 개입하지 않는 등 동업자 정신을 이어왔는데 이후 영풍에 대한 장 씨 일가의 지배력이 확고해지자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경영 개입을 시작하며 문제가 시작됐다’고 맞서고 있다. 본래 영풍 지분을 장 씨 일가와 비슷하게 보유했던 최 씨 일가는 2000년대 들어 고려아연의 신기술 개발과 신규 투자 등을 위해 영풍 지분을 꾸준히 매각한 바 있다.
양측은 올 들어 고려아연의 경영권, 핵심 계열사, 공동 영업 중단에 대한 법적 정당성 등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올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장 씨, 최 씨 일가는 각자 확보한 자체·우호 지분율을 바탕으로 각종 안건에 대한 표 대결을 벌였다. 이후 영풍 핵심 계열사인 서린상사 경영권을 두고 다퉜고 더 높은 지분을 가진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쥐며 잠정 승리했다. 이외에도 공동 구매·영업 중단,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황산 처리 중단에 대해 서로 날 선 입장을 표명하며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 간 분쟁처럼 후세에 들어 동업자 간 공동경영 체제가 깨지고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는 다수 있다. 국내 2위 종합페인트 기업인 삼화페인트공업은 기업을 공동 창업한 김복규·윤희중 씨 일가가 3세 경영에 접어든 2010년대 들어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당시 분쟁은 삼화페인트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김 씨 일가 측에 발행하자 윤 씨 일가 측이 ‘기업 지분율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며 반발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법적 공방은 김 씨 일가 측이 대법원에서 BW 발행 정당성을 인정받으며 최종 승리했고 경영권은 김장연 현 회장이 2015년부터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공동 창업이 후세 들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올 3월 공동 창업주인 최승주·조의환 회장의 차녀(최지선 부사장)와 차남(조규형 부사장)을 각각 등기임원으로 선임하며 2세 경영 체제를 본격화한 삼진제약이 대표적이다. 두통약 ‘게보린’으로 잘 알려진 삼진제약은 1941년생 동갑내기인 최 회장과 조 회장이 1968년 공동 창업한 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동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매출 2921억 원, 영업이익 206억 원을 거두며 실적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