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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한 사고'의 재난…'불의의 사고'는 없다 [리뷰]

■사고는 없다(제시 싱어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차량 살인·화재·홍수 등 참변들

'사고'라는 표현으로 의미축소 돼

美 휩쓰는 마약 중독도 마찬가지

인적과실 부각, 구조적 문제 뒷전

책임성과 예방 가능성 모두 부재

'누가 이득을 보는가'에 문제제기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16명의 사상자를 낸 희생 현장에 추모객들이 남긴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16명의 사상자를 낸 희생 현장에 추모객들이 남긴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의 한 도보. 명동 방면으로 일방향 통행을 하는 차선에 ‘역주행’하는 차가 그 일대에서 보기 힘든 속도를 냈고 인도를 덮쳤다. 식당 앞에서 삼삼오오 사담을 나누고 있던 이들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 평소 흔하게 보던 일상적인 풍경이 몇초만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많은 이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과연 이들이 겪은 참변에 ‘사고’라는 표현을 쓰는 게 옳은가.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등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사고(Accident)’라는 표현에 저항한다. 사고라고 표현하는 순간 책임성은 사라지고 예방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손을 놓게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르포르타주 ‘사고는 없다(위즈덤하우스 펴냄)’를 통해 개인의 삶을 뒤흔든 재난이 어떻게 ‘사고’라는 단어로 무게감이 축소되는지 설명한다. 2022년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의 부제는 더욱 직접적이다. ‘부상과 재앙의 치명적 증가-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값을 치르는가(The Deadly Rise of Injury and Disaster)’.




포드 자동차가 모델T를 선보인 1908년 미국에서 75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매년 희생자는 증가했다. 이때만 해도 교통사고를 일컫는 용어는 ‘차량 살인’이었다. ‘차량 살인’이 발생하면 군중들이 몰려들어 가해자를 공격하는 일들도 흔했다. 1920년대에는 상류층 커뮤니티인 뉴욕시티클럽에서 아동 교통사고 사망 지도를 발간하며 ‘도시 살인 지도’로 명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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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고의 책임을 인적 과실로 보는 프레임이 우세해지면서 ‘사고’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차량제조사들이 책임성을 피하기 위해 모든 사고를 두 가지 원인으로 분류했다고 지적한다. ‘무단횡단한 보행자’와 ‘운전석의 미치광이(과실 있는 운전자)’다. 산업 재해에서는 안전에 부주의한 노동자 프레임이 비슷하게 적용됐다.

안전 자체가 개인에게 달렸다는 생각은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늦추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안전벨트 탑재를 의무화한 것은 1968년이다. 하지만 관련 기술은 이미 십수년 전에 개발됐다. 1955년 미국 포드의 로버트 맥너마라 최고경영자(CEO)는 제너럴모터스(GM)와 경쟁에 맞서 ‘생명을 살리는 패키지’를 선보였다. 충돌시 운전자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적은 오목한 운전대와 완충재를 댄 계기판, 햇빛 가리개, 안전벨트 등이 포함됐다. 사고에서 인적 과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고 시 자동차가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경쟁사의 압력으로 이 패키지 판매는 조기 종료됐다. 이로부터 13년 뒤 안전벨트가 의무화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와 불의로 돌리는 순간 예방적 접근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 전역을 강타한 마약성 진통제 중독이 확산된 데도 구조적인 원인이 있었다. 오피오이드 중 하나인 옥시콘틴 처방은 별도의 훈련이나 인증이 필요하지 않지만 오피오이드 중독자가 약을 서서히 끊도록 돕는 치료제인 부프레놀핀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서류를 한 무더기 작성해야 하고 마약단속국의 면제 허가를 받아야 한다. 8시간의 이수 교육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오피오이드에 중독되기는 쉽지만 이로부터 빠져나오기는 어려운 일들이 반복된다. 인종적, 경제적인 요소에 따라 해결 방법의 적극성도 크게 달라진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퇴근길 서울 한복판에서 겪은 사고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중국 동포를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생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산업장의 안전 사고에 눈길이 덜 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저자가 이 주제에 몰두하게 된 데는 뚜렷한 계기가 있다. 그는 2006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자전거 도로에서 연인을 잃었다. 자전거 도로에 한 차량이 난입하면서다. 자신의 차가 사람을 쳤다고 표현한 가해자는 법정에서 차량에 의한 과실치사형을 선고받기 전 최후 진술에서 “일어난 이 사고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말한다. ‘일어난 이 사고’라는 표현에는 책임성, 관련성도 동시에 예방의 가능성도 사라져버린다고. 그의 연인이 사망한 자전거 도로는 또 한 번의 차량 테러 이후 강력한 안전장치를 갖추게 됐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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