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금리인하 깜빡이는 켰지만 속도조절…"빠르면 10월 내릴 듯"

[미뤄진 피벗]

◆ 한은 기준금리 12연속 동결

물가 석달 연속 2%대로 안정세

금통위원 2명 '3개월내 인하' 의견

"집값 상승 정책실수 금물" 공감대

섣불리 움직였다 환율 등 악영향

연준 금리 내린 이후 따라갈 듯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은이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줘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그런 정책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가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기 국고채 금리가 최근 다른 나라보다 상당 폭 하락한 것은 한은이 금리를 곧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선반영된 것”이라며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와 금융 안정을 고려할 때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고, 이 기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총재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인 오후 12시 9분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157%로 전날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마감가도 0.043%포인트 상승해 3.163%를 가리켰다. 5년물과 10년물 역시 각각 0.047%포인트, 0.036%포인트 상승 마감했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 상승률 둔화 추세와 함께 성장, 금융 안정 등 정책 변수들 간의 상충 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나갈 것”이라는 대목이 시장의 기대를 높였지만 기자회견을 거치며 분위기가 다잡힌 것이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시장 문제를 넘어 정권 전체적으로 부담을 주는 요인”이라며 “금통위원들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한은의 입장이 금리 인하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핵심은 인하 시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금통위원 2명이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5월에는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의견이 1명이었는데 이달 2명으로 증가했다. 이 총재는 “2명은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기 때문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통화 긴축이 시작된 지 약 3년 만에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는 깜빡이를 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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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물가 안정 덕이 크다. 6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4% 오르며 3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한은의 타깃(2%)에 가까운 2.2%다. 최근 수출 호조세에도 소매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내수 침체가 고용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모습은 한은 입장에서 큰 부담이다. 6월 취업자 증가 폭은 9만 6000명으로 두 달 연속 10만 명을 밑돌았다.

시장이 보는 금리 인하 시점은 10월이다. 이 총재가 금리 인하와 관련해 △환율 △부동산 △가계부채 등 세 가지 요인을 꼭 짚어 얘기한 만큼 향후 시장 상황을 본 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움직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9월 이후에 한은도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의미다. 당장 환율은 1380원대 수준으로 지난해 말(1288원) 대비 7% 이상 높다. 홍경식 국제금융센터 부원장은 “환율을 고려해 연준의 결정 이후에 곧장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직 금통위원은 “섣불리 움직였다가 환율이 급등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며 “한은이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가격과 직결돼 있는 가계부채 역시 변수다. 이 총재만 해도 가계부채와 관련해 “5월에 생각한 것보다 좀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9월에 시행되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결과 또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상반기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지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5%가 될 수도 있다”며 “2단계 DSR 시행 이후 가계대출 흐름이 한은의 인하 시점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대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집값 오름세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물가나 가계부채, 환율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한은이 아예 인하를 내년으로 넘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금리 인하 압박이 이 총재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계속해서 금리를 내리라고 하면 이 총재는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리게 된다”며 “한은이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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