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1승으로 ‘반짝’하고는 사라지나 했다. 지난 시즌 첫 우승 뒤 컷 탈락만 여섯 번. 올 시즌도 상금 랭킹 34위에 머무를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고지우(22·삼천리)는 한 번 우승이 전부인 선수로 남기를 거부했다. 특유의 폭발력으로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빛나는 2승째를 올려 골프 팬들의 눈과 귀를 다시 한 번 자기 쪽으로 당겨왔다.
14일 강원 정선의 하이원CC(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에서 고지우가 우승했다. 2라운드에 버디만 6개로 1타 차 2위까지 솟구쳤던 그는 3라운드에 5타를 줄여 1타 차 단독 선두 자리를 꿰찼고 이날 4라운드에서 다시 버디만 3개의 노 보기 플레이를 완성하며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상금 1억 8000만 원을 손에 넣었다. 나흘 간 버디 20개에 보기는 딱 하나. 17언더파 2위의 전예성을 2타 차로 따돌렸다. 시즌 첫 승이자 지난해 7월 맥콜·모나 용평 오픈 우승에 이은 1년 만의 통산 2승이다.
제주 출신으로 국가상비군을 지낸 고지우는 합기도 유단자다. 아버지가 합기도장을 운영했었다. 무술 경력과 어울리게 투어에서 고지우의 별명은 ‘버디폭격기’다. 데뷔 시즌인 2022년 버디 수 336개로, 지금은 미국 무대를 뛰는 유해란과 공동 1위를 했다. 공격적인 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다.
1년 전 첫 우승은 4타 열세를 뒤집는 대역전극이었고 이번 2승째는 지키는 우승이었다. 턱밑 추격은 허용해도 역전은 끝내 불허했다.
고지우가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던 후반 초반은 금방이라도 한바탕 큰 파도가 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같은 챔피언 조의 이채은과 전예성이 각각 11번(파5)과 12번 홀(파4)에서 차례로 버디를 챙겼다. 둘은 후반 들어 파 행진으로 잠잠하던 고지우를 1타 차로 압박했다. 여기에 앞 조의 윤이나는 후반 6개 홀에서 버디 5개를 쓸어 담는 무서운 페이스로 고지우를 3타 차 쫓아왔다.
역전패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무렵 고지우의 대답은 역시 버디였다. 추격자 이채은이 65야드 어프로치 샷을 그린 앞 벙커에 빠뜨린 15번 홀(파5)에서 고지우는 결정적인 버디 한 방을 떨어뜨렸다. 60야드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핀에 아주 가깝게 붙이지는 못했는데 4.5m 버디 퍼트를 넣어버렸다. 내리막 경사의 쉽지 않은 퍼트였지만 고지우의 스트로크에는 확신이 있었고 홀로 들어가는 볼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3홀 남기고 2위 전예성을 2타 차, 보기를 범한 이채은을 3타 차 3위로 밀어낸 고지우는 남은 홀을 모두 파로 막고 축하 물 세례를 받았다. 투어 사상 18홀 최다 버디(12개) 기록을 가진 전예성, 올해 라운드당 버디 1위(4.16개)의 윤이나를 모두 제치고 ‘버디퀸’ 전쟁에서 승리했다.
고지우는 “티샷부터 아이언, 퍼트까지 최근 다 좋아져서 자신 있게 플레이했다. 마지막까지 긴장했는데 버티다 보니 우승까지 왔다”고 했다. 처음 우승한 사람처럼 경기 후 눈물을 멈추지 못한 고지우는 “운 좋은 첫 승 뒤 정말 안 풀려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2승을 하려면 정말이지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구나’ 싶고 진짜 간절했다. 오늘 아침까지 잠도 거의 못 자고 나왔다”고 했다.
고지우는 KLPGA 투어의 자매 선수다. 두 살 터울 동생 고지원도 정규 투어를 뛴다. 고지원의 이번 대회 성적은 1언더파 공동 48위. 전예성은 올해 세 번째 준우승이고 윤이나는 5타나 줄여 일곱 계단을 뛰어올라 이채은과 15언더파 공동 3위로 마감했다. 윤이나는 최근 4개 대회 성적이 공동 2위-기권-공동 2위-공동 3위다. 1·2라운드 단독 선두였던 신인 이동은은 14언더파 5위다. 전반기를 마무리한 KLPGA 투어는 8월 1일 제주삼다수 마스터스로 재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