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트럼프 집권시 美北 교섭 재개…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대비해야”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전 주일대사)

文정부 ‘탈원전’ 강행에도 체코 원전 수주 기적 같은 쾌거

尹 한미·한일 관계 복원 바탕 ‘상호 존중’ 한중관계 모색

북러 밀착 ‘레드라인’ 제시하고 中 적극적 역할 유도해야

국제 정세 긴박, 국가생존 달린 안보 초당적 협력 필요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북 간 교섭이 재개될 수 있다”면서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북 간 교섭이 재개될 수 있다”면서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미국 대선 레이스가 요동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할 경우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일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 후 첫 유세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김정은에게 양키스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었다”며 북한 정권과의 친밀함을 과시했다.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은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설 경우 미국과 북한 간 교섭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트럼프 리스크’ 대비를 주문했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원전 생태계를 지켜내고 쾌거를 이룬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15년 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정부 협상단에 참여했던 신 전 차관은 “미중 갈등 속에 한국 원전은 인공지능(AI) 시대와 맞물려 더 큰 수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대선이 한국의 안보에 큰 변수로 떠올랐다.

△지금 전 세계가 11월 미국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만약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 더 강력한 트럼프주의가 발현될 것으로 본다. 1기 때는 트럼프 후보 본인도 당선될 줄 모를 만큼 준비하지 못한 채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차기 정부 정책과 인사까지 준비를 마쳤다. 특히 동맹을 경시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한반도 안보 문제도 거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려된다. 방위비 분담 증가, 주한미군 역할 변화, 미북 핵교섭 재개, 한국의 동아시아 안보 역할 분담 요구 등 여러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최근 미국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이번에 한미 정상이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북핵 억지력 확대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대한 진전이다.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에 따른 핵협의그룹이 세 번에 걸친 협의를 통해 도출한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이다. 다만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다면 미북 교섭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지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2기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동아시아, 유럽, 중동 순일 것이므로 중국에 대한 전략 경쟁 차원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동맹 자산인 한국을 크게 경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수원이 24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 이어 15년 만에 K원전이 거둔 쾌거다. 바라카 원전 수주 때 외교부 1차관 자격으로 당시 한승수 총리를 단장으로 현지에 파견돼 지원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그때는 정말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2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4기 수주를 따낼 수 있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원전인 APR1400으로 우리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한 사례였다. 체코 원전 쾌거도 그에 견줄 만한 성과로 본격적 원전 해외 수출의 청신호라고 할 수 있다.

-왜 오랜만에 원전 수출 성공 소식이 나온 것일까.

△바라카 원전 쾌거는 한국 원전의 한 단계 도약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의 생태계를 크게 흔들었다.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의 역주행에도 불구하고 우리 업계가 원자력 생태계를 지켜낸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미국과 유럽의 안전 인증을 모두 통과한 한국 원전은 탁월한 시공 능력, 높은 가격 경쟁력, 엄격한 공기 준수 등으로 서방에서 가장 앞서 있다. 앞으로도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더 큰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영국·네덜란드·루마니아·폴란드 등 수많은 나라들이 원전을 앞다퉈 짓게 될 것이다. 대부분 나라들이 원전 강국인 러시아와 중국과는 전략적 차원에서 계약할 리가 없으므로 그 기회가 한국에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지만 한일 관계에는 아직도 제약 요인들이 많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국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안이 발생하는 데다 36년 식민 통치라는 과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양국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한일 관계는 2012년 이후 악화돼 문재인 정부 때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퇴행을 겪었다. 한일 관계가 좋았을 경우 양국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기회비용을 크게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일 간에 가장 큰 현안이었던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문제를 ‘제3자 변제’라는 해법으로 풀어낸 것은 잘한 일이다. 일종의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어버린 것과 같은 정치적 결단으로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정상 궤도로 진입시켰다. 다만 강제 동원 문제도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일본군 위안부, 대륙붕 7광구 공동개발 협정,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관련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지만 조기에 회복시켜 안정된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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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대남 도발을 일삼는 북한과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이 가능한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 경제협력은 가능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 때도 경협을 하려고 애썼지만 유엔 제재에 막혀 전혀 성과가 없었다. 북한은 남한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남한으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남북 2국가론’을 내놓았는데 이 상황을 우리가 주시해야 한다. 과거 동독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서독과의 2국가론으로 전환한 것도 동서독 간에 크게 벌어진 격차가 원인이었다.

-북한의 핵 공격 능력은 어디까지 왔다고 보는가.

△북한은 핵탄두 90여 개 분의 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핵탄두를 60여 개 정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핵탄두의 다량 보유도 큰 문제이지만 북한이 전술핵과 전략핵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는 점이 위협적이다.

-북러의 급속한 밀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통한 미국 본토 공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이 재진입 기술과 제어 기술까지 가다듬고 있다. 만에 하나 러시아가 핵·미사일을 고도화하는 기술을 제공해 북한이 대형 발사체, 정찰위성, 정확한 유도, 다탄두화, 핵추진잠수함 등 복잡한 메커니즘의 공격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면 우리 안보에 큰 허점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러시아에 분명하게 ‘레드 라인’을 제시하고 미국·일본과 함께 북러 밀착을 경계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유도해야 한다.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국내 학자들은 우리가 1년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얘기다. 우리가 지금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고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 형편에서는 경제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다만 앞으로 한미 동맹이나 주한미군에 변화가 있으면 확장억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 원전의 공급망 안전이라는 차원에서 우리가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울러 한반도에 미군의 전술핵을 재배치해 북핵 억지력을 높이고 향후 미북 간 핵 감축 교섭 때 좀 더 강한 위치에서 교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소련의 중거리핵미사일 동독 배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서독의 ‘이중결정(중거리핵미사일 서독 배치 요구)’ 교훈을 참고해야 한다.

-여야가 안보 문제에서도 정쟁을 벌이고 있는데.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의 흐름과 속도, 강도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과연 국내 정치권이 그런 식으로 정쟁에 휘말려 시간과 기회를 허비할 때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외교 안보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사안이므로 반드시 초당적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여야가 분열된다면 북한의 도발과 북러의 밀착 등으로 인한 안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국민 분열로 안보 의식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안보 문제만큼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에 나서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시의 한반도 중심 외교는 북한과 중국에 중점을 두었는데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는 좋아지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우리의 기본인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그다음으로 한일 관계를 복원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중 관계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젠 중국과는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원칙을 지키며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9차 한일중정상회의를 통해 한중 관계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만큼 상호 존중 원칙 위에서 소통을 강화하면서 착실히 관계 개선을 모색해가야 한다.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 권욱 기자


◆He is…

1955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무고시 9기로 외교통상부 조약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주이스라엘대사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 외교통상부 2차관과 1차관을 거쳐 주일대사를 지내며 2년 동안 대일 외교를 담당했다.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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