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집값 상승기에 편승…계약서 검증없이 실거래가 2배 '깜깜이 대출'

◆부동산 '담보 부풀리기' 기승…의심사례 616건 적발

시장 활기에 대출 실적경쟁 과열

사고 예방할 전산시스템조차 없어

당국 "내달 말까지 2차 정밀 조사"

위법·부당행위에 엄중조치 '경고'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A 은행은 매도·매수인이 공인중개사 없이 작성한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매매 금액이 실거래가보다 2배나 높게 쓰여 있었지만 계약서 금액에 맞춰 초과 대출을 내줬다. 개인 간 작성한 계약서의 진실 여부에 대해 의심하고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하지 않은 것이다. B 은행 역시 지식산업센터 분양계약서의 분양가가 실거래가의 2배에 달했음에도 분양가를 기준으로 실제 가능한 대출보다 더 많은 금액을 빌려줬다. 분양가와 실거래가 차이는 단순한 조회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간과된 것이다.






이처럼 부동산 감정평가액을 넘어서는 대출을 내준 ‘담보 부풀리기’ 등 의심 거래가 은행권에서 600여 건 적발됐다. 최근 NH농협은행과 국민은행 등에서 담보 부풀리기를 통한 배임 사건이 잇따라 터진 뒤 이뤄진 자체 점검에서 유사 사례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 이어지던 시기에 은행들이 과도한 대출 실적 경쟁을 벌인 데다 이를 통제하기 위한 자체 검증 시스템마저 부실했던 탓이다. 금융감독원은 추가 정밀 조사를 통해 고의·중과실 여부를 들여다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15개 은행이 2021~2023년 실행한 부동산담보대출 중 1만 640건의 표본에 대해 자체 점검을 실시한 결과 담보가액 대비 초과 대출(124건), 여신 취급 관련 내규 위반(492건) 등의 의심 거래 616건을 찾아냈다고 24일 밝혔다. 표본은 △대출 규모가 크거나 많은 대출 건을 취급한 점포 △거래 가액 등락이 심한 지역 내 점포 △현재 부동산 거래 가격이 과거 대비 현저히 하락한 지역 내 점포 등에서 사고 개연성이 높은 대출을 중심으로 추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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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점검은 올 상반기 은행권에서 ‘담보 가치 부풀리기’를 통한 배임 사고가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금감원이 점검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올해 들어서만 밝혀진 초과 대출 관련 배임 사고가 6건에 달한다. 국민은행에서 총 487억 원 규모로 3건이, 농협은행에서 174억 원 규모로 3건이 발생했다.

금감원이 은행권에 점검을 요청한 것은 부동산 시장 상승기 은행권의 실적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담보 가치보다 무리하게 대출을 내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담보 가치를 높게 잡아 무리하게 대출을 내줄 경우 부동산 경기 악화로 담보 가치 하락 시 기존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번 점검 대상 기간에 포함된 2021년의 경우 집값이 막바지 폭등을 이어가던 시기다. 1차 점검 결과에서 의심 거래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규 위반 492건도 서류 누락 등으로 현재로서 과다 대출 여부 확인이 어렵다는 의미이지 고의적인 초과 대출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보고된 초과 대출 의심 사례는 통상적인 매매·분양가격 부풀리기 외에도 다양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가족 관계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임대차계약서상 임대료가 적정 수준 대비 2배 이상 과다 책정하거나 임대차계약서상 특약 사항으로 임대료 유예 기간이 있어 사실상 임대소득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계약서상 월세 금액을 그대로 적용해 임대소득을 과다 산정한 경우도 있었다. 상가 담보물 현장 조사에서 확인한 선순위 임대차 권리액을 차감하지 않고 대출 한도를 높게 산정한 ‘선순위 과소 차감’ 사례도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음 달 말까지 2차 정밀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고의·중과실 여부 등을 확인해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수 은행이 관련 사고를 거를 수 있는 업무 방법과 전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 등 ‘내부통제’ 허점도 이번 점검에서 드러났다. 상당수 은행에서는 영업점의 대출 취급자가 감정평가 법인을 지정해 공정 평가를 차단할 수 있는 직무 분리 체계가 미흡했다. 일부 은행은 감정평가액이 실제 매매가격보다 높은 경우에도 검증 없이 담보 가액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대출 취급자가 담보인정비율(LTV)을 높게 적용하더라도 검증·통제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이 미비한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임대차현황서 확인, 현장 조사 등도 소홀하게 이뤄졌다. 사후 점검 역시 책임자 점검 수준에 따라 편차가 커 실효성이 낮았다.

금감원은 여신 내부통제 시스템 보완을 위해 모범 규준 개정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관련 사고 예방 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감독·검사도 강화하고 점검 기간 중 도입된 ‘부동산 감정평가액 점검 시스템’을 통해 은행별 운영 현황을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신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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