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빅테크들 사이에서 ‘소버린(주권) AI 구축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선 네이버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AI 후발주자인 아시아 국가들과 소버린 AI 개발 협력을 논의해 미국 중심의 소수 빅테크를 견제하는 한편 자사 AI 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2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소버린 AI 개발 및 파트너십 구축을 논의하기 위한 미팅을 가졌다. 하정우 네이버 퓨처 AI센터장 겸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 등이 관련 미팅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베트남도 네이버에 소버린 AI 모델 구축 관련 문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는 베트남에 사무소가 있기 때문에 소버린 AI 개발 논의가 가시화될 경우 관련 협력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버린 AI 구축을 추진 중인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의 IT 기업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앞선 기술을 보유했으면서 비슷한 문화권을 공유한 덕분에 관련 모델 구축 논의가 수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서비스를 개발 중인 한 업체 임원은 “베트남과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교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다 보니 문화 차이가 크지 않다"면서 “특히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는 금융 등 다른 분야의 한국 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기 때문에 협력 루트도 다양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네이버 외에도 KT와 업스테이지 또한 최근 태국 자스민그룹 계열사 자스민테크놀로지솔루션(JTS) 측과 오는 10월 ‘태국어 거대언어모델(LLM)’ 상용화를 목표로 협력하는 등 아시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 AI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소수의 빅테크로부터 ‘AI 주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니즈(needs)가 맞아 떨어진 점도 협력 이유로 거론된다. 베트남 등의 경우 AI 기술을 활용한 정부 차원의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활발하다. 베트남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마스터플랜 2030’ 등의 계획을 발표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 및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구글의 2023년 동남아시아 디지털경제 보고서(e-Conomy SEA 2023)에 따르면 베트남은 2023년 대비 2025년 디지털 경제 성장률(20%)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되는 아시아 국가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소버린 AI 모델 구축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 네이버는 사우디 등 중동 국가에 이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소버린 AI 문제를 논의하는 등 AI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X’ 개발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각 지역 문화와 언어에 최적화한 AI 모델 개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19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소버린 AI가 국가마다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며 다수 국가·기업과 파트너십 구축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소버린 AI 모델의 수익성 확보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AI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소버린 AI 구축을 위해서는 개발 인력과 인프라, 많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