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전공의 복귀 요원한데…‘1만명’ PA 간호사 합법화 길 열릴까

의정갈등 장기화 속 간호계 숙원 ‘간호법’ 제정 재추진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토대로 법제화 요구 높아져

여야 당론 채택에도 의사단체 반대…PA 제도화 등 쟁점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간호법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커졌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 중 극히 일부만 수련병원에 돌아온 데다 이달 말까지인 하반기 전공의 모집 역시 저조해 일선 병원들의 인력난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PA 간호사가 의료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의료계 반대가 거센 만큼 의정갈등의 또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법률 제정안이 22대 들어 4건 발의됐다. 이 중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이수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간호법’이 지난 22일 법안심사소위원회 테이블에 올랐다.




간호법은 현재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호사 등의 업무를 떼 내 독자적인 법률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간호사 업무 범위와 간호인력 수급, 양성 및 근무환경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좀 더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을 둔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1977년 처음 추진한 이후 47년간 간호계의 숙원이었다. 이들 법안 모두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급증하는 간호간병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법안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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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부 조항에 차이가 있어 여야 간 조율이 필요하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의사 대신 의료행위를 해오던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 간호사의 업무 규정 여부가 대표적인 쟁점이다. 현행 의료법에는 간호사 업무가 ‘진료의 보조’ 등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흔히 하는 혈액검사, 상처 소독 등의 의료 행위는 원칙적으로 의사의 일인데 그동안 의사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간호사들이 대신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PA 간호사들은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주로 전공의가 기피하는 진료과에서 대리 처방, 수술 보조 등 전문 의학 지식이 필요한 의사 일까지 도맡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에 근무 중인 PA 간호사는 1만 3000여 명에 달한다. PA는 미국·캐나다·영국 등에서 국가면허로 관리되고 있지만 국내 의료법에는 근거 규정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커지자 PA간호사들이 검사와 치료·처치, 수술, 마취, 중환자 관리 등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21대 국회 임기 말 ‘채 상병 특검법’ 등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간호법 제정이 불발됐던 터라 복지부 입장에서도 간호법 제정을 더이상 미루기 힘든 상황이다. 추 의원안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위임 하에 ‘검사·진단·치료·투약·처치’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 등 PA 업무를 구체화했다. 기존 특성화고와 학원 뿐 아니라 전문대 출신도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학력제한을 폐지한 것도 특징이다. 반면 강 의원안은 간호사의 업무를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하되 의료기사 등의 업무는 제외했고 PA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지난해 간호법 제정 추진 당시 가장 논란이 컸던 ‘지역사회’ 문구는 빠졌다.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전공의 집단 이탈 상황이 계속되며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전공의 집단 이탈 상황이 계속되며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법은 지난해 4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양당 모두 간호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회 통과 자체가 어렵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의대 증원을 계기로 촉발된 의료공백 장기화가 변수로 작용하며 1년 여만에 정부·여당도 간호법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의협과 함께 간호법 제정을 막아섰던 14보건복지의료연대가 다소 느슨해진 것도 간호법 제정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실제 간호조무사와 방사선사들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던 이유가 여야 법안에 나눠 담기자 간호법 반대가 아닌 ‘수정 필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의사들의 반대는 여전히 거세다. 의협은 간호사 근무영역 규정과 관련해 “문구를 수정했을 뿐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간호사의 활동영역을 무한히 확장함으로써 향후 의사의 지도·감독을 벗어난 불법 의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 18일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정부가 촉발한 의료농단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이제 와서 간호법이라는 기름을 붓고 있다”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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