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대표적 반미(反美) 국가인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개표 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과거 대선 이후 빚어졌던 유혈 사태가 재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29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열린 대선 투표 관련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시위는 수도 카라카스 대통령궁 인근을 포함해 베네수엘라 187곳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시위대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거리 행진에 나섰고 곳곳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를 찢고 발로 밟는 장면도 포착됐다. 북서부 팔콘주 코로시에서는 시위대가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기도 했다.
경찰은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등 주요 건물을 봉쇄하고 최루탄을 쏘면서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번 소요 사태로 군인 2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며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폭력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고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은 “과거의 끔찍한 상황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지지자들에게 30일 카라카스 유엔사무소 앞에 집결할 것을 촉구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경우 인명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2014년·2017년·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투표 종료 6시간 만에 마두로 대통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해 3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관위가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고 시민단체의 개표 참관을 차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정선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야당이 파악한 개표 결과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275만 표, 야권 연합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627만 표로 집계됐다. 반면 선관위는 마두로 대통령이 515만 표,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445만 표라고 발표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투표 결과와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선거 결과 발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선거 관리 당국이 모든 표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계해 그 정보를 야권 및 독립적인 참관인들과 즉시 공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아르헨티나·칠레 등 중남미 7개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독립적인 참관인의 입회하에 베네수엘라의 선거 결과에 대한 감사를 촉구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들 국가가 워싱턴에 굴종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의 외교관을 추방하고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