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금리가 연일 하락하면서 대출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를 막으려는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오히려 시장금리 하락분이 예금금리에는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만 인위적으로 금리를 높인 까닭에 대출금리의 하락 폭이 예금금리 하락 정도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예대마진이 늘어나는 등 은행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은행채(AAA등급) 5년물 금리는 3.242%로 2022년 4월 4일(3.21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 들어 은행채 금리가 3.2%대로 내려선 것은 처음이다.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것은 국고채 금리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전날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99%를 기록하며 28개월 만에 2%대로 내려앉았다. 같은 날 10년물 금리는 연 3.046%로 0.062%포인트 하락하면서 2거래일 연속 연저점을 경신했다.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출금리 인상도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오히려 금융권 밖에서는 은행들이 예금금리는 시장금리 하락 정도에 따라 내리고 대출금리는 인위적으로 인상한 탓에 시장금리 하락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서 은행의 이자이익을 결정하는 예대마진만 더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의 지표금리로 사용되는 은행채 금리는 이달 1일 기준 3.49%였지만 한 달 만에 0.248%포인트 급락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은행권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 하단을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은 3.0%에서 3.34%, 신한은행은 2.94%에서 3.05%, 우리은행은 3.15%에서 3.25%로 오히려 상승했다. 하나은행은 3.34%에서 3.134%로, NH농협은행은 3.36%에서 3.35%로 소폭 내리기는 했지만 그 폭이 은행채 금리의 하락 폭에 못 미친다.
이는 은행들이 가계대출 증가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은 이달 3일(0.13%포인트)과 18일(0.2%포인트) 두 차례에 걸쳐 주담대 금리를 올렸고 신한은행은 15일과 22일 각각 0.05%포인트, 29일에는 0.2%포인트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다.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우리은행도 한 차례 주담대 금리를 올렸으며 우리은행은 다음 달 2일부터 아파트담보대출 금리를 0.3%포인트 추가 인상하기로 했다.
반면 은행 예금금리는 가파르게 내리고 있다. 주요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12개월 만기 기준)를 살펴보면 ‘KB Star 정기예금’의 경우 이달 1일 3.5%였던 금리가 30일 3.35%로 0.15%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한쏠편한정기예금’은 3.47%에서 3.35%로, ‘WON플러스 예금’은 3.52%에서 3.4%로 각각 0.12%포인트 내렸다. ‘하나의정기예금’과 ‘NH올원e예금’은 각각 3.45%에서 3.35%, 3.55%에서 3.45%로 0.1%포인트씩 하락했다.
은행들이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대출금리를 오히려 인상하거나 찔끔 내리고 예금금리는 큰 폭으로 인하하면서 예금과 대출 금리 차에 따른 이익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상반기 대출 자산 증가로 사상 최대 규모의 이자이익을 기록했던 5대 금융지주가 하반기 예대금리차 확대로 또다시 역대급 이익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5대 금융지주의 올해 상반기 이자이익 총합은 25조 1144억 원으로 전년도 상반기에 비해 4.4%(1조 608억 원) 늘었다. 전년 대비 순이자마진(NIM) 하락세에도 견조한 이자이익을 냈던 은행권이 하반기에는 자체 금리 인상 등에 따른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기에는 NIM도 함께 줄어들지만 최근과 같은 자체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경우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하반기 남은 기간 동안 금리 인하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금리는 낮아진 가격 메리트와 크레디트 시장의 과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크게 반등하기 어려운 수급 여건이 이어지고 있다”며 “8월부터는 국고채 발행이 더욱 축소되고 크레디트물 공급도 많지 않아 강보합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