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고 운동신경도 둔한 제가 육군사관학교(37기)에 턱걸이로 합격하고 중장까지 진급했습니다. 후배들은 제게 ‘선배님은 중령에서 끝나는 게 맞는데 중장까지 된 것은 기적입니다’라고 말하는데, 동의합니다. 기적과 같은 제 경험을 공유하면 우리 군과 안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습니다.”
6월 말 회고록 ‘보통장군 전인범’을 출간한 전인범(사진) 전 특전사령관(예비역 육군중장)은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5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겪은 많은 경험들을 가감 없이 후배들과 군에 관심 있는 국민들에게 들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책은 출간한 지 한 달도 안 돼 1쇄 3000부가 완판, 2쇄에 들어갔다.
‘보통장군 전인범’은 군 관련 전문 출판사인 ‘길찾기’의 제안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지난해 말 책이 나올 수 있었지만 올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선거 출마로 오해받을 수 있어 총선 후로 출간을 미뤘다고 했다.
현역 시절 그는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폭탄 테러 당시 이기백 합동참모의장을 구해 그 공로로 보훈훈장 광복장을 받았고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이 탈레반 반군에 납치됐을 때 군사작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전 전 사령관은 “아웅산 테러, 샘물교회 신도 피랍 등을 책에 소개했는데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었다”며 “주한 미군기지 반환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오염 회복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마찰도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 8월 발생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이후 군 대비 태세 관련 일화도 책에 소개했다. 전 전 사령관은 “당시 제1군사령부 부사령관이었는데 한 번은 북한이 우리 쪽으로 포격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계획대로라면 북한으로 포탄 3000발을 쏴야 했다”며 “그런데 확인 결과 레이더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북쪽에 3000발을 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회상했다.
전 전 사령관은 군 생활을 하면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27사단 사장단 시절 눈 올 때 병사들과 함께 직접 제설 작업을 하고 병사들에게 경례를 하기도 했다. 그는 “사단장 때 전역하는 병사들에게 ‘군대에서 뭘 배웠느냐’고 물으니 ‘삽질하는 걸 배웠다’고 대답을 했다”면서 “그래서 난 그들에게 ‘내 밑에서 군 생활을 하느라 고생 많았는데 특별히 해줄 건 없고 투스타 경례나 받고 가라’며 ‘이기자’라는 사단 경례 구호와 함께 경례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내게 경례를 받은 병사들 중 사회에서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난 장군에게 경례받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군대에서 고생한 병사들에게 술자리에서 군 생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어서 뿌듯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사단장, 유엔군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특전사령관 등 군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친 전 전 사령관은 현재의 남북 관계 및 안보 현실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북한 쓰레기(오물) 풍선 남하와 우리 군의 대북 방송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데 이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북한과 잘 지내고 전쟁 발생을 막아야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얼마 전 국군정보사령부 대북 요원들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정말 개탄스럽다”며 “과거에도 군 정보 유출이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련자들을 강력히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전 사령관은 현재 군 시절 못지않은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고 프라모델 제작이 취미라는 그는 동물자유연대 이사, 한국모형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또 미 육군협회 석좌위원이기도 하며 유튜브 채널 ‘전인범 장군’과 ‘더벙커: 전쟁사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전인범 장군’은 7만 6500명, ‘더벙커’는 3만 9100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인기 채널이다.
전 전 사령관은 “개 식용 반대 및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미 육군협회의 유일한 비미국인으로서 한미 동맹 강화에 일조할 것”이라며 “또 유튜버로서 전쟁사를 알기 쉽게 풀어주고 군 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다”고 활동 계획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