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공통적으로 내년까지 설비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 상향 그래프가 한동안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챗GPT,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등 AI 시장 선점을 위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큰손’ 고객들의 주문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등 세계 주요 데이터센터 운영사인 IT 빅테크들이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와 내년 모두 설비투자액(CAPEX)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근 시장에서 AI 투자 회의론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과잉투자가 과소투자보다 낫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회계연도(2023년 하반기~2024년 상반기) AI 설비투자가 557억 달러(약 75조 8355억 원)에 달한다고 밝히면서 다음 회계연도(2024년 하반기~2025년 상반기) 설비투자 액수도 이를 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 성장률의 8%포인트가 AI 덕에 발생했고, AI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상태라고도 강조했다.
메타는 올해 설비투자 최소 전망치를 350억 달러에서 37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고 내년도 설비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AI 과잉투자보다는 과소투자의 위험성을 역설하며 올해 2분기 설비투자 금액을 1분기(120억 달러)보다 늘린 132억 달러로 결정했다.
AI 서비스 확장을 위한 데이터센터 신설도 이어진다. MS는 최근 말레이시아(22억 달러)와 인도네시아(17억 달러)에 연달아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밝혔다. 구글도 말레이시아에 20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싱가포르(90억 달러)와 일본(150억 달러), 태국(50억 달러) 등에 데이터센터 설비투자를 할 계획이다.
IT 빅테크들의 설비투자 증가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주요 메모리 회사들에겐 향후 D램 주문을 담보해주는 중요 신호다. 서버는 크게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프로세서와 지근거리에서 이들의 연산을 돕는 D램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설비투자로 서버 수가 늘어나면 D램 주문도 이에 비례해 늘어나는 구조다. 서버 시장은 D램 산업에서 40%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의 주요 수요처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큰 호재다. 모바일과 PC 등 3대 D램 수요처 중에서도 고용량, 고부가 제품 위주로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이윤 증대와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AI 공룡들의 설비투자 러시 속에서 내년에도 DDR5 D램 모듈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문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급 측면에선 HBM에 집중된 선단공정 생산능력으로 인해 HBM을 제외한 제품 생산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생산량 증가율)에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 역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빅테크 설비투자 러시 속에서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들이 내년에 쓸 D램과 낸드 물량까지 계약을 요청하고 있다”며 “내년까지 시장 전반에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착공한 청주 M15X의 건설 작업을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AI 설비투자에 대한 관점이 단기 AI 수익화 모델의 회의감에 따른 피크아웃 관점에서 견조한 투자 지속 관점으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