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태권도는 지루한 경기 진행 방식으로 ‘발펜싱’이라는 오명을 들었다. 전자호구 시스템(Protector Scoring System·PSS)이 도입되면서 한 발을 든 상태로 공격하는 변칙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은 탓이 컸다. ‘닭싸움’ 같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지만 파리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는 지난 도쿄 대회 때와는 다른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PSS의 큰 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림픽 기록 계측 업무 파트너인 오메가의 ‘스위스타이밍’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PSS의 개편을 시도했다. 이전 대회까지 납품해오던 업체 대신 국내 대학과 산학협력에 나선 것이다. 새로운 PSS를 만들어낸 국내 업체에 납품을 맡겼다.
이번 대회 PSS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타격 감지 센서와 근접 감지 센서다. 도쿄 대회까지 전자호구가 타격을 감지하는 센서는 코일 방식이었다. 아무리 강한 타격을 해도 상대가 맞은 부분에 코일이 없는 경우 점수를 얻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반대로 약한 공격을 해도 코일 부분에 스치기만 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도입된 전자호구에는 필름 방식의 센서가 적용됐다. 호구 전면에 필름 형태의 센서를 장착해 전보다 훨씬 강하고 정교한 타격이 있어야만 점수로 인정되게 만들었다.
도쿄 때보다 더 정교한 근접 감지 센서도 장착됐다. 태권도는 규정상 발차기의 경우 복사뼈 아래 부분이 상대를 타격해야 점수가 인정된다. 이 때문에 그 부분의 동작을 감지하는 근접 감지 센서는 정교함이 생명이다. 이번 대회 PSS 납품을 맡은 업체는 근접 감지 센서 방식으로 도쿄 대회까지 쓰이던 자석 대신 전파를 이용해 정보를 인식하는 무선주파수식별장치(RFID)를 사용했다. 그 결과 점수 획득 오차를 줄여 보다 공정한 경기를 가능하게 했다.
국내 업체와 함께 이번 대회 PSS를 개발한 이원재 국민대 스포츠산업레저학과 교수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으로 국내 업체와 오랜 시간을 두고 이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전 대회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를 마지막까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