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에서 정보기술(IT) 관련 종목이 폭락하면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년에도 ‘빅테크’ 회사들의 AI 투자 의지가 꺾이지 않고 온디바이스 AI 전환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에 발생할 수 있는 D램 공급 부족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신규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트렌드포스는 7월 리포트를 통해 내년 D램 시장의 연간 매출이 1364억 8800만 달러(약 187조 원)로 올해(906억 7400만 달러)보다 50.5%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트렌드포스가 월간 리포트에서 2025년 메모리 시장 전망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램의 공급 부족 현상도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4분기에는 D램의 수요가 공급량을 13.46%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서버용 D램은 수요량이 공급을 15.78% 앞지를 것으로 예상했다.
트렌드포스의 발표는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AI 거품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나온 수치여서 주목을 끈다. AI 거품론은 ‘인공지능이 실체가 없다’는 업계 일각의 주장에서 시작됐다. 아직 뚜렷한 수익을 내는 AI 서비스가 사실상 없고 신규 비즈니스 모델도 딱히 보이지 않는 반면 주요 AI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인텔 등 AI 반도체 리더들의 주가는 이 담론의 등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메모리 낙관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빅테크들의 AI 사업에 대한 의지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알파벳 등 AI로 주가를 끌어올렸던 회사들이 내년에도 설비투자 경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래 예측은 어렵지만 (AI) 역량을 확보해두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AI용 서버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범용 D램보다 가격이 6~7배 이상 높지만 판매량이 꾸준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범용 D램이 들어가는 스마트폰·노트북PC 시장에서도 온디바이스 AI 붐으로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할 것으로 기대된다. 모건스탠리 측은 6월 “메모리 공급망이 HBM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일반 D램에 대한 투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2025년부터 스마트폰 및 개인용 컴퓨터의 AI 업그레이드에 따라 추가 메모리 용량이 필요하고 심각한 공급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D램 수요 급증에 대비하기 위해 신규 투자와 공정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규 팹인 평택 4공장(P4)의 1층 일부에만 낸드플래시 라인을 남기고 전면 D램 라인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SK하이닉스는 최신 공장인 이천 M16을 위주로 신규 생산능력을 늘려나간다. 10나노급 5세대(1b) D램 위주의 신규 설비투자와 함께 올 3분기 내에 10나노 6세대(1c) D램 개발을 완료한 후에 시험 라인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