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지하 전기차, 소방차 보내 꺼내라고?…구식 매뉴얼 바뀌려면 3년 뒤에나

소방청, 전기모빌리티 화재대응 R&D 착수

2027년 이후에야 지하주차장 화재 매뉴얼 마련

현행 가이드라인, 배터리 위험성·현실 반영 못해

지하 전기차 화재 대응 방법을 소개한 전기자동차 화재대응 가이드 내용 일부. 견인차로 전기차를 옮길 때 소방펌프차가 동행해 재발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자료제공=소방청지하 전기차 화재 대응 방법을 소개한 전기자동차 화재대응 가이드 내용 일부. 견인차로 전기차를 옮길 때 소방펌프차가 동행해 재발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자료제공=소방청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와 같은 사고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 매뉴얼이 2027년 이후에야 마련된다. 현행 가이드라인은 소방관이 전기차 가까이에서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는 기초적인 방법만 늘어놓거나, 사실상 진입이 불가능한 소방차를 지하주차장으로 투입시키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대응책을 안내하고 있다. 전기차가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지하주차장·기계식 주차장 화재 등 새로운 유형의 사고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예산·부처 협의 등을 이유로 뒷북 대응에 나서고 있다.



14일 소방청의 2024년 예산서에 따르면 소방청은 올해 예산 39억 4200만 원을 편성해 ‘전기모빌리티 시설 및 부품 화재대응 기술개발 로드맵’ 사업에 착수했다.

이 로드맵은 지하·기계식 주차장 전기차 화재 대응기술, 전기차 화재조기진압용 소화시스템, 재사용 배터리 화재 대응 뉴얼, 열폭주 징후 감지시스템 등 신유형 모빌리티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기술과 매뉴얼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기술(R&D) 사업이다.

문제는 이 로드맵이 2027년까지 산학연 R&D를 진행하는 중장기 과제라는 점이다.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대응 연구의 경우 2024년 화재위험요소 분석→2025년 화재 특성 확인→2026년 화재 대응기술 개발→2027년 대응매뉴얼 및 화재안전기준 개발 순으로 진행된다. 최근 폭발 사고를 계기로 체계적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작 소방 당국의 매뉴얼은 3년 뒤에야 나온다는 의미다.

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화재 현장에서는 국립소방연구원이 지난해 마련한 전기자동차 화재대응 가이드와 소방청의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에 따라 전기차 화재 진압이 이뤄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실에 맞지않는 대응법들이 포함돼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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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가이드라인은 지하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주변을 분무 소화하고, 전기차 하부 배터리팩 바닥 부위에 집중 소화해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라고 안내하고 있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되면 소방관에게 연기 발생을 막기 위해 질식소화덮개를 덮으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추가 폭발하면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전기차를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꺼내는 과정에 대한 매뉴얼 내용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견인차로 이동시 소방펌프차가 동행해 재발화에 대응하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소방차가 지하로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3미터 높이에 불과한 입구 높이 때문에 소방차가 지하주차장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입구 높이가 4미터는 되야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데 지금 지하주차장 높이로는 소방차가 진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높이가 4미터 이상 되는 데가 없는데도 펌프차를 대동해서 전기차를 이동시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사고 위험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R&D 예산 삭감, 정부 부처 간 의견 조율 문제로 대응이 늦어졌다. 전기·수소차 화재대응 R&D 예산은 2020년 6억 1900만 원에서 2021년 11억 원으로 늘었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줄어 2023년에는 전액 삭감(사업 종료)됐다.

잇딴 전기차 화재로 체계적인 매뉴얼 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 대응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보조금만 늘리면서 전기차 보급에 너무 치중했고, 정작 안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며 “R&D 예산을 늘리고 현실에 맞는 대응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화재 관련 R&D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관계기관과 적극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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