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자의눈] '그들'만의 우리은행

금융부 신중섭






지인이 수년간 애정을 쏟았던 사업을 접기로 했다. 경기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데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해도 이미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아 더 이상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새벽에 대리운전을 하고 휴무에는 공사 현장에 나가 일해 빚을 갚고 있다. 다시 돈을 빌려 사업을 이어가는 게 무조건 능사는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근면하고 사업에 열정적이었던 그였기에 대출 여력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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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 1월까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의 친인척이 전·현직 대표 등을 맡고 있는 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42차례에 걸쳐 616억 원을 대출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이 가운데 350억 원은 제대로 된 절차도 거치지 않은 부당 대출이었다. 이 중 269억 원의 대출에서 부실·연체가 발생했다. 은행의 대출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사업을 접고 스리잡·포잡까지 뛰어가며 빚을 갚고 있는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큰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이 특혜 대출에 관여했다는 의혹에는 선을 긋고 있다. 손 전 회장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부정 대출 사건을 언론 보도로 처음 접했다”며 “직접 지시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심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손 전 회장이 지배력을 행사하기 전 4억 5000만 원에 불과했던 친인척들의 대출이 지배력 행사 후 100배도 넘게 불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적지 않은 금융 사고가 터졌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은행권 전반에 횡령·배임 사고가 잇달아 내부통제 강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지주 회장까지 연루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은행업은 무엇보다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 ‘우리’은행이 ‘그들만의’ 은행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임종룡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낀다”며 올바른 기업 문화 조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 약속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하다.


신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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