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4대 시중은행의 희망퇴직자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4분의 1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을 의식해 퇴직금을 축소하고 경기 침체 영향으로 재취업도 녹록지 않은 만큼 퇴직을 선택하는 직원들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에서는 고금리 장기화로 은행들의 평균 급여가 웬만한 대기업보다 높아 안정적인 직장에 남고자 하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서 올 들어 이날까지 희망퇴직자는 총 149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996명 대비 503명(25.2%) 줄어든 규모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희망퇴직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는 신한은행의 예상 퇴직자 규모를 고려해도 올해 은행권 희망퇴직자는 전년 대비 3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희망퇴직을 통해 231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희망퇴직 여부와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단행한 하반기 준정년 특별 퇴직을 통해 모두 42명의 직원을 대상자로 확정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하나은행의 희망퇴직자 44명보다 소폭 줄어든 규모다.
은행이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정부의 비판적인 인식에 은행권이 퇴직금 등 혜택을 축소한 것이 퇴직에 대한 인기가 크게 시들해진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퇴직자에 대한 특별 퇴직금을 35개월에서 최장 39개월까지 인정해주던 은행들은 올 들어서는 31개월로 대폭 인정 기간을 깎았다. 28개월(하나·NH농협)로 줄인 은행도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특별 퇴직금 산정 기간이 기존 35개월에서 31개월로 감소하자 지난해 713명이던 희망퇴직자가 674명으로 줄었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36개월 치에서 31개월 치로 줄이면서 퇴직자 수도 388명(2023년 상반기)에서 234명으로 줄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퇴직금을 포함해 각종 임금 산정을 보수적으로 정하는 분위기”라며 “희망퇴직금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퇴직 신청자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물가와 경기 한파의 영향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희망퇴직 대상 연령에 접어든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목돈이 생기더라도 경기가 좋아야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녀 양육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따졌을 때 수억 원 규모의 퇴직금이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창업이나 재취업 시장의 전망이 이전만큼 밝지 않아 희망퇴직보다는 안정적인 은행의 울타리에 남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은행권 연봉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6050만 원으로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 6700만 원, 국민·우리은행 6000만 원, 신한은행 5500만 원 순이었다. 4대 은행 모두 상반기 삼성전자의 1인당 평균 급여 5400만 원보다 많았다.
은행 직원들의 근무 기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평균 근속 연수의 경우 KB국민은행이 17년 3개월로 4대 은행 중 가장 길었다. 이어 우리은행(17년), 신한은행(15년 6개월), 하나은행(15년 5개월) 등의 순이었다.
다만 월급 산정 개월 수 감소에도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희망퇴직자의 퇴직금 수준은 5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당국의 ‘5대 은행 성과급 등 보수 체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2022년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총 퇴직금은 5억 4000만원이었다. 이는 복지 지원을 포함한 희망퇴직금 3억 6000만 원과 법정 기본 퇴직금 1억 8000만 원을 합산한 수치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하는 기본 퇴직금과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희망퇴직금으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