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여당 자민당의 총재 선거일이 다음 달 27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주요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하며 ‘포스트 기시다’를 향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말 불거진 당내 비자금 스캔들로 파벌 해체가 이뤄진 뒤 처음 진행되는 총재 선거로, 같은 파벌에서도 복수의 의원이 의욕을 보이는 등 혼전이 펼쳐지고 있다. ‘추천 의원 20인 확보’가 사실상 1차전이 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수(數)의 힘’을 앞세워 오랜 시간 당을 지배했던 일본식 파벌 정치도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변화를 맞이할지 주목된다.
19일 니혼게이자이·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은 다음 달 27일 총재 선거 투·개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일정이 드러나면서 잠룡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자민당 총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22일 고향인 돗토리 현에서 다섯 번째 총리 도전을 공식화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이에 앞서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40대(49세),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에서 자란 내가 파벌과 관계없이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민당이 변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고 말했다. “구 계파(파벌)의 지원은 일절 요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으나 고바야시는 당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아베파 출신의 중견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도 그를 지지하는 의원 20여 명이 함께했다.
두 사람 외에도 무(無)파벌인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과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기시다파로 분류되는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도 최근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출마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파벌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다. 모테기파에서는 수장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과 가토 가쓰노부 전 관방장관이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1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면서 추천인(소속 의원 20인) 확보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NHK는 “당내 파벌 대부분이 해산을 결정한 상황에서 같은 파벌 출신의 여러 의원이 출마에 나선 만큼 ‘20명 확보’를 위한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특정 후보 라인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우려해 추천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는 자민당 정치의 뿌리인 파벌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중·참의원 의장을 제외한 국회의원 367명과 동수의 당원(당비 납부 일본 국적자), 당우(자민당 후원 단체 회원) 투표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면 결선투표에서 국회의원 비중이 커지기에 파벌 구도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50여 명의 아소파와 해체를 선언한 다른 파벌들의 동향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 부총재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이 출마 의향을 굳혔으나 파벌 내 지지세가 약한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노 디지털상은 아소 부총재의 만류에도 출마를 강행했고 ‘미운털’이 표 이탈로 이어져 고배를 마셨다. 아소파 외에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중심의 비주류파, 아베파 중심의 4선 이하 젊은 의원들, 기시다파 등이 여전히 적지 않은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파벌 해체 후 진행되는, 전례 없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창당 이래 계파에 의해 지탱돼온 당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