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이 KB국민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림자 규제로 꼽히는 ‘1거래소-1은행’ 원칙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은행 계좌가 없는 빗썸 이용자는 원하지 않아도 계좌를 신설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금융 당국의 그림자 규제로 이용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1거래소-1은행 원칙은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대표적 그림자 규제다. 국내에서 가상자산사업자가 원화를 취급하려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고 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한 뒤 당국이 신고를 수리하면 정상적으로 영업이 가능하다. 당국은 자금세탁방지 등의 이유로 거래소 하나당 은행 한 곳이라는 원칙을 따르도록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원화마켓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벵크, 빗썸-농협은행, 코인원-카카오뱅크, 코빗-신한은행, 고팍스-전북은행과 짝을 이루고 있다. 사기업 간 계약이기에 이러한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코인원은 지난 2022년 기존 농협에서 카카오뱅크로 원화 입출금 은행을 변경했다. 빗썸도 지난 6년간 농협과의 동행을 마무리 짓고 국민은행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동이 발생할 때마다 그림자 규제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해당 거래소를 계속 사용하려면 이용자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거래소가 선택한 은행 계좌를 새로 연동해야 한다. 신규 계좌를 텄다면 계좌 입출금 한도 금액을 재설정하는 등 불편함도 잇따른다. 1000원짜리 물건을 구입하더라도 원하는 결제 수단을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는데, 별도의 ‘이용자 보호법’까지 마련된 가상자산은 사용자 선택권이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권단 디케이엘 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이번 사안은 당국이 이용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그림자 규제가 문제가 된 건 이번 사안만이 아니다. 권 변호사는 “지난 2022년 헌법재판소는 가상자산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금지한 2017년 정부 방침이 공권력 행사가 아니기에 헌법소원 대상조차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ICO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전했을 뿐 법적 구속력이 없기에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국내 다수 기업은 해외에 추가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법인을 설립하고 ICO를 진행했다. 기업 입장에선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가상자산 거래량이 높은 국가다. 가상자산 리서치 업체 카이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화를 통한 가상자산 거래량은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통한 거래량을 앞질렀다. 금융 당국이 국내 가상자산 업계의 건전한 성장과 이용자 선택권 보장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이러한 그림자 규제를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