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종신보험 가입자가 그동안 납입한 보험료 중 일부를 연금 등 노후 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계약자가 사망한 후 배우자나 자녀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생전에 되돌려받아 노후 생활비로 활용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중 연금 구조가 취약한 계층에게는 안정적인 노후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생명보험 업계는 조만간 ‘생명보험금 유동화’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계약자가 사망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사망보험금을 생존 시에 일부 또는 전부 받아 활용하는 방안을 다룰 것”이라며 “법적인 검토와 업계와 협의를 거쳐 내년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망 시 보험금으로 받을지, 생존해 있을 때 나눠 받을지 선택권을 가입자에게 주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업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안은 납입이 끝난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연금 방식으로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입자가 사망보험금 중 일부를 연금으로 전환시켜 받고 남은 돈은 사망 시에 자녀 등 수익자에게 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망 시 3억 원을 받는 종신보험에 가입한 계약자가 보험금을 완납한 경우 2억 원은 연금으로 받고 나머지 1억 원은 사망 후 배우자나 자녀가 받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032830)·한화생명(088350)·교보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은 일부 상품에 ‘연금 선지급’ 특약을 넣어 새로 가입하는 고객에게 이 같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가입자들은 이 같은 기능이 없는 종신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가입자들이 생존 시에 사망보험금을 받아 쓰려면 제도나 법적 허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 부분을 해결해준다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중도 인출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종신보험 완납자 중 목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망 시 받을 생명보험금의 전체 또는 일부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해 계약자가 이를 생활비로 쓰게 하고 사망 시에는 원리금을 제한 돈을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생명보험금 유동화에 따른 재무적 영향은 거의 없다”며 “동일한 재원을 언제 주느냐, 일시 또는 분할로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명보험금을 유동화하면 상당한 수준의 안전망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정KPMG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생보사의 총자산 규모는 938조 원이다. 이 중 종신보험 비중이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금액이 유동화될 경우 막대한 자금이 노인 생계비로 활용될 수 있어 보험 업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자살한 경우나 보험금을 노린 범죄 등에 연루됐을 경우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사전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보험금과 연금을 보다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는 신상품도 봇물처럼 나올 것”이라며 “노후와 사후를 동시에 준비할 수 있는 상품이 나오면 점점 인기가 없어지고 있는 종신보험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