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이 어려운 갈색 맥주 페트병을 투명 용기로 바꾸겠다는 주류 업계의 약속이 끝내 물거품이 됐다. 5년 전 주류 업계는 올해 말까지 투명 맥주 용기를 도입하겠다는 자율 협약서를 체결했지만 시한을 불과 3개월 앞두고 기술적인 이유로 이행이 불가하다고 정부에 통보했다.
18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주류 업계 1, 2위인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000080)는 최근 환경부 측에 ‘PET맥주병 재질·구조개선 자발적 협약서’ 내용 이행이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하이트와 오비 측이 업계 간담회를 통해 기술적 한계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며 “사실상 올해 12월까지는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칠성음료 등 주류 3사는 2019년 12월 환경부,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등과 함께 ‘PET맥주병 재질·구조개선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PET 맥주병은 복합 재질의 갈색 몸체와 종이라벨 등으로 재활용 비용 상승과 제품 품질 저하 등 재활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주류 업계와 환경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까지 페트병의 재질·구조를 캔이나 유리병 등 재활용이 용이한 포장재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재활용 여건이 변경되거나 패키징 기술 발전 등 이행 여건의 변화가 있을 경우 개선 기간을 앞당기는 방안까지도 제시했다. 환경부는 이보다 앞선 2018년 주류 3사를 포함해 CJ제일제당·농심 등 국내 식음료 업체 19곳과 투명 포장재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맥주의 경우 변질 가능성에 따른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감안해 5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개선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2020년 1월 하이트는 페트 재질 차단막 실증을 진행했지만 빛 차단성 부족 및 맥주병 외관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이듬해에도 하이트는 신소재 코팅 페트병 실증을 했지만 대용량 페트병 적용에는 실패했다.
오비맥주도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대용량 캔 생산성과 재생원료 사용 등을 검토했지만 소비자 선호도가 낮거나 내압·물성 약화 등의 이유로 도입하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도 오비는 두 차례에 걸쳐 실증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유일하게 롯데칠성만 2021년 업계 최초로 투명 페트병을 적용한 맥주 ‘클라우드’를 내놓는 데 성공했다. 이후 롯데칠성은 올 3월 ‘크러시’를 투명 페트병으로 출시하며 대용량(1.6ℓ) 맥주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롯데칠성은 시장점유율이 1.3%에 불과해 전체의 70.9%, 27.9%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오비와 하이트의 기술 개발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비와 하이트 측은 법을 위반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비맥주 측은 “현재 정부와 업계가 MOU 취지에 맞게 페트병을 대체할 친환경 패키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MOU 체결을 한 부분이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비 측은 롯데칠성의 투명 페트병 도입에 대해서도 “투명 단일 재질 PET 제품은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아직 품질 측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재활용 업계에서도 이견이 있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하이트 역시 “투명·단일막 구조로는 탄산을 유지하기 어려워 투명·삼중막 페트를 추가로 검토했지만 재활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재활용 업계의 우려로 대안을 모색 중”이라며 “재활용 페트를 재생해 만든 원료 도입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또한 기간 연장 등 업체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발적 협약이기 때문에 대체 포장재 도입 기한 연장에 대한 얘기를 특별히 나누지는 않았다”며 “재활용을 잘할 수 있다는 다른 대안을 보여달라는 의견을 업체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유색 페트병은 복합 재질이라 페트뿐 아니라 나일론 재질 등이 섞여 있어 재활용은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음료 페트병은 무조건 투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법률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며 “생산자들이 고품질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하면 굳이 사용을 금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히 대안은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