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재정준칙 법제화 국회’를 요구한다

구정모 대만 CTBC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 하강을 우려하며 빅컷을 단행했다. 전세계가 경기 침체에 대비한 가운데 우리는 어떤가. 물가는 여전히 높고 국가 재정은 빚더미에 오르고, 천정부지로 솟은 집값으로 인해 국민의 시름은 깊어졌다. 앞으로 다가올 경기 침체에 버팀목이 되어줄 재정 여력이 없다는 것이 더 암울한 상황이다. 거기다 늘어나는 나랏빚으로 인해 미래 세대의 자산을 미리 끌어다 쓰고만 있다.

재정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22대 첫 정기국회는 결산을 거쳐 10월이면 본격적인 내년도 예산 심의에 들어간다. 2025년 정부 예산안은 677조 4000억 원으로 전년도 본예산 대비 3.2% 증가한 규모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처음 편성했던 예산안(2023년도)의 증가율은 5.2%였고, 2024년도는 2.8%에 머물렀다.



건전재정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였지만 2025년에도 그 이전 두 해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3년 연속 적자예산으로 편성되고 국가 채무는 매년 70조 원 이상 증가하고 있다. 적자예산 편성 배경에는 국내외 경제 여건이 받쳐주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감세 정책과 세수 추계 실패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2년 간도 마찬가지다.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국가채무 및 재정수지 전망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2026년과 2027년에 각각 75조 8000억 원, 73조 1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국가채무도 비슷한 규모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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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문재인 정부 5년 간은 어떠했는가. 그 5년 간도 국가채무가 400조 원 이상 증가했다.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였지만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관리재정수지는 연평균 80조 원 적자에 머물렀다. 건전재정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였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여전히 매년 70조 원 이상 지속되고 있다. 사실 올해도 재정 운용이 녹록지 않다. 2024년 예산은 이미 30조 원 이상 세수 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재정 토론회에서도 향후 2년 간 재정 운용 역시 그 이전 3년 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이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가릴 것 없이 국가채무는 매년 70~80조 원씩 불어나고 있다. 이렇게 판에 박듯이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 바로 대못 박힌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누적을 초래한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고 평가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 그 이전의 정부는 이와 같은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재정의 역할, 아니 정부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우리 재정을 이처럼 누더기로 놓아두어도 옳은 일일까.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 이상 넘지 못하게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당장 법제화해야 한다. 포퓰리즘으로 인해 민생도 재정도 파탄나는 소모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게끔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정부는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건전재정의 원칙’을 고려해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를 관리하도록 했지만, 그 실효성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또 해외에서도 튀르키예와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이미 모두 도입하고 있다.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복지 지출이 축소되거나 경제위기 시 재정의 탄력적 운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재정적자 -1% 이내, 스웨덴은 재정흑자 1% 이상으로 엄격한 준칙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제 재정준칙 도입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이미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다만 선거를 앞둔 선심성 지출이나 대못 박힌 각종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실행 안 하고 있을 따름이다. 2025년에는 대선도 총선도 지방선거도 없어 재정준칙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경제와 재정은 다시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를 것이다. 이번 예산 국회를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국회’로 만들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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