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사업자(VASP) 갱신 신고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 원화 거래소가 잇따라 밈코인을 상장하면서 거래소 자율규제의 실효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가상자산 거래소 자율규제 협의체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발표한 상장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최근 상장된 밈코인 상당수는 상장 요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원화 거래소 업비트는 지난 두 달간 밈코인 3종을 연달아 상장했다. 지난 8월 20일 브렛(BRETT)과 페페(PEPE)를 USDT 마켓에 동시에 상장했고, 이어 지난 19일엔 캣인어독스월드(MEW)를 BTC·USDT 마켓에 상장했다.
국내 원화 거래소 가운데 가장 많은 밈코인 거래를 지원하고 있는 코인원도 밈코인 추가 상장에 나섰다. 코인원은 지난 10일 썬도그(SUNDOG)의 원화 마켓 상장을 알렸다. 거래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코인원은 지난 한 주간 ‘코인원 댕댕이 페스타’를 열고 강아지 테마 밈코인 △SUNDOG △도지코인(DOGE) △시바이누(SHIB) △봉크(BONK) △볼트이누(VOLT) 등 5종 가운데 3종 이상을 거래한 이용자에게 SUNDOG 2만 8000개를 분할 지급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들 밈코인 상당수가 지난 7월부터 자율규제 형태로 모든 국내 거래소에 적용되고 있는 상장 심사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닥사가 공개한 상장 심사 요건에 따르면 거래소는 상장 심사 시 △발행주체의 신뢰성 △이용자 보호 장치 여부 △기술·보안 수준 △법규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상장을 원하는 가상자산 프로젝트팀으로부터 가상자산 유통량 계획 등 중요사항을 제출받고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익명의 주체가 오로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발행한 밈코인의 상당수는 이러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업비트가 지난달 상장한 PEPE는 발행주체와 주요 운영주체가 누구인지, 소재지가 어디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 수 없는 프로젝트다. 유통량 계획 또한 아직까지 거래소에 공유하지 않았다. 코인원이 지난 10일 상장한 SUNDOG 역시 발행주체·주요 운영주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상장 가이드라인에서 발행 주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가상자산은 적격 해외 가상자산 시장에서 2년 이상 거래된 경우 일부 심사 요건을 완화한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긴 하지만, 최근 국내 상장된 밈코인 BRETT·PEPE·MEW·SUNDOG 모두 출시 2년을 채우지 못한 신생 코인이다.
업계에선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가 걸린 갱신신고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밈코인 상장이 잇따르는 데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닥사의 주도로 소속 원화 거래소 5곳만이 자율적으로 이행하던 이전 상장 심사 가이드라인과는 달리 지난 7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과 함께 거래소에 적용된 신규 가이드라인은 금융당국이 직접 참여해 수립한 만큼 어느 정도의 구속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기 떄문이다. 사업자 갱신신고 시즌을 맞아 최근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각각 거래소 현장 점검에 나서며 감독망을 조이고 있기도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금융당국과 협력해 만든 만큼 당국도 숙지하고 있고 갱신 심사에서도 당연히 참고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장 요건에 맞지 않는 밈코인 상장과 관련 이벤트가 이어진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앞서 상장 가이드라인 때문에 신규 상장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거래소들은 이용자보호법 시행에 앞서 가상자산을 무더기 상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가이드라인 적용 후에도 상장 요건에 맞지 않는 가상자산 상장이 문제없이 이어지면서 자율 규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거래소 대표들을 불러모아 상장 가이드라인 등 자율 규제를 지킬 것을 직접 당부하기도 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여전히 실효성 없는 맹탕 규제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 과정에서 닥사를 법정 기구화하거나 별도의 자율규제 기구를 성문화해 가상자산 분야에도 금융투자협회처럼 당국이 관리할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하는 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닥사 또한 아직 법정 기구가 아니더라도 ‘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과 ‘법 없이도 가능한 이용자 보호 조치’를 구분해 당국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