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매년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입니다. 지난해에는 신림역에서 묻지마 칼부림을 벌여 4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과 관악구 등산로에서 일면식도 없는 3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범죄자들은 최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습니다. 올해에는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레아 씨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기준으로 살인이라는 죄명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585건입니다. 이 중 처리 건수는 565건입니다. 유기형이 388건, 집행유예가 102건이고 무기징역을 받은 건수는 15건으로 집계됐습니다. 무죄가 나온 경우는 7건으로 처리건수 대비 0.01%로 무죄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형법 제250조 제1항(살인)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아들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에서 법원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 부천경찰서는 7일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A(52)씨를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A씨의 아들은 평소 술주정을 많이 부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에도 밤늦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물건을 부수고 가족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행패를 부렸고, A씨는 이를 만류하다 화가 나 넥타이로 아들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A씨가 사건 직후 스스로 112에 신고를 했고, 지구대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고 밝혔다. A씨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 경찰의 조치에 따랐다. 검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2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체험 프로그램에서 살인 사례를 선택해 판사 체험을 진행했습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들을 만류하다 우발적으로 살해까지 간 다소 안타까운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판단에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발적인 범행이고 A 씨도 자신의 범죄를 스스로 시인한 점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졌기 때문에 중형을 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징역 5년 초과 10년 이하의 실형을 최초 판결로 선택했습니다.
법정 공방에서 검사는 A씨가 생각을 좀 더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검사는 “현장에서 피해자가 행패를 부릴 때 피고인이 차라리 현장을 떠났다면 결과적으로 살인을 피할 수 있었다”며 “아내가 만류할 때 목을 조르는 행위를 멈췄어도 아들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검사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분에 걸쳐 목을 졸라 아들의 생명을 뺏고 피고인의 범행에는 잔혹한 범행 수법이라는 특별가중요소가 있다”며 “관대한 처벌을 한다면 친족 간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는커녕 선처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심어질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A씨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한다는 점을 들어 변론을 해나갔습니다. 변호인은 “난동을 부리는 아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아들이 숨지자 자수를 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며 “수사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서럽게 울다’ ‘한참을 울다’ 라는 내용이 반복된다. 이러한 사정을 비춰볼 때 피고인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는 걸 잘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A씨가 중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짚으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반성하며 30통 이상의 반성문을 제출했다”며 “피해자 유족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피고인 또한 형벌 이상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A씨는 최후진술 과정에서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가슴이 아프다”며 “뼛속까지 아픔 마음으로 속죄하겠다”고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살인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살펴봤습니다. 보통 동기의 살인의 양형은 △감경 7년~12년 △기본 10년~16년 △가중 15년 이상, 무기 이상입니다.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피고인이 자수를 했고 피해자의 술주정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점,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경 요소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양형이 감경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최종적으로 7년 판결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에게 7년을 선고했을까요.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아들인 피해자가 술에 취해 모친에게 행패를 벌여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며 “112에 자수를 했고 자백을 하면서 잘못 깊이 늬우친 점은 유리한 양형 요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살인죄는 무엇보다 존엄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이유를 막론하고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징역 5년을 선고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양형이 감경 영역에 있어 징역 7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징역 5년이 나왔습니다. 감경 영역보다 더 낮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판결에서는 특별 양형인자 중 감경 요소로 자수와 처벌불원이 들어갔습니다. 특별 양형인자에 대한 평가 결과 감경 영역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특별감경인자만 2개 이상 존재하거나 특별감경인자가 특별가중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을 경우에는 양형기준에서 권고하는 형량범위 하한을 1/2까지 감경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특별 조정된 감경 역역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감경영역 범위 하한인 7년이 반으로 줄어 권고형 범위가 3년 6개월에서 12년으로 정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