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가 집권 여당 신임 총재 선출 후 첫 거래일 큰 폭으로 하락했다. 차기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에 시장이 경계감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 총재가 실행 의지를 내비쳐온 ‘금융소득 과세 강화’가 투자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30일 도쿄증시에서 닛케이평균은 전 주말 대비 4.8% 내린 3만 7919.55엔에 마감했다. 이날 장 시작과 함께 낙폭을 키운 주가는 장 초반 3만 8000엔이 붕괴됐고 한때 5%(2000엔) 넘게 급락해 3만 7797.91엔까지 내려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닛케이평균의 이날 하락 폭은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첫 거래일로는 199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전까지는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재선 때 4.24% 하락(종가 기준)이 최대 낙폭이었다.
이날 하락은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총재로 선출된 뒤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선거 전 금융소득 과세 강화와 법인세 인상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기업의 부담 증가 우려가 커지며 일본 주식 매도가 확산했다.
이날 지수를 끌어내린 ‘금융소득 과세 강화’는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한 차례 논란을 불렀던 이슈다. 현재 일본에서는 금융상품 투자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 일률적으로 20.3%의 세율을 매긴다. 사업·급여 소득세와 달리 누진과세가 적용되지 않아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형평성을 위해 과세 강화를 실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쳐왔다. 선거 기간에도 해당 이슈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부유층의 해외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자 “신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나 개인형확정기여연금(iDeCo)에 대한 과세 강화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2021년 총재 선거 때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언급했으나 주가가 급락하며 후폭풍이 일자 취임 후 관련 논의를 미뤘다.
업계에서는 금융소득 과세가 강화될 경우 일본 주식 투자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려 외국인투자가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시바 차기 총리의 정책에 대한 우려로 외국인투자가들을 중심으로 일본 주식의 포지션을 축소하는 움직임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시바시 다카유키 골드만삭스증권 부사장도 “(주말 방송 등을 통해) 신임 총재가 선거 때 제시한 정책의 궤도를 수정하고는 있지만 금융소득 과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엔화 강세도 주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엔화 약세(엔저) 심화로 인한 물가 상승에 반대하면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우호적인 견해를 내비쳐왔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1엔대까지 오르며 전주 주 거래시간 종가(143.18엔) 대비 강세를 보였다. 엔고로 실적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수출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이어져 지수 전반을 끌어내렸다.
다만 새 정권이 본격 출범하지 않은 데다 정권 초 급격한 증세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주가 하락이 곧 멈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이치가와 마사히로 미쓰이스미토모DS에셋매니지먼트 전략가는 “지금의 시장 반응은 상당히 투기적인 색채가 강하고 일시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날 증시 약세는 금융 완화 지속을 강조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 담당상의 당선 기대감에 26~27일 이틀간 올랐던 증시가 상승분을 반납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주말 동안 높아진 중동 정세의 긴장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시바 신임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정권은 가능한 한 일찍 국민 심판을 받는 게 중요하다”며 중의원(하원)을 조기 해산하고 10월 27일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