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고 느낍니다.”
2022년 미국 뉴욕주 셔터쿼의 극장에서 강연에 나섰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극단주의자의 피습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흉기에 찔려 왼쪽 팔의 신경이 절단되고 한쪽 눈을 잃게 된 그가 재활과 동시에 시작한 일은 ‘쓰는 일’이었다.
1일 한국에서 출간되는 ‘나이프(knife·칼)’은 루슈디가 다시 사고 현장을 찾기까지 13개월의 여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나이프'는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며 “책을 쓰면서 행복을 ‘재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통스러운 눈꺼풀 봉합 수술을 거치는 동안 문인 동료들과 배우자 일라이자 그리피스의 존재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설명이다.
매해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언급되는 루슈디는 문학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이슬람교의 여러 금기를 풍자하는 장편 소설 ‘악마의 시(1988년)’는 출간 이후 이슬람에 대한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이슬람 세계에서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무슬림 최고 지도자는 루슈디의 암살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그는 끊임 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34년 뒤 피습을 겪었다. 범인은 극단주의자 하디 마티르로 그는 루슈디의 책을 읽지 않은 채, 단지 유튜브에서 말하는 것만 보고 ‘부정직하다’는 결론을 내려 살인을 결심했다.
루슈디는 “정보에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적은 정보를 알게 됐고 더 무지해졌다”면서도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어버리는 자유”라며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이프'는 작가가 직면했던 죽음의 순간을 직시하며, 이후 오랜 시간 지속된 회복의 과정을 서술한다. 책 속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치명상을 입힌 범인을 회고의 중요한 한 축으로 등장시키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루슈디는 범인을 ‘공격자(Assailant)’의 약자인 ‘A’로 지칭하고 몇 회에 걸쳐 가상의 대화를 진행하며 이를 담아냈다. 네 차례에 걸친 대화는 결국 ‘넌 날 몰라. 영원히 모를 거다’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을 통해 루슈디는 ‘악마의 시’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다툼’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혹시 범인이 ‘나이프’를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구성했냐”는 질문에 루슈디는 “A가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며,“폭력과 생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다루기 위해 이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루슈디는 “다음 프로젝트로는 소설을 쓰고 있다”며 “독자들이 독서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