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를 계기로 마련 중인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방안’ 발표에 앞서 소비자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연초 ELS 사태를 수습하며 늦지 않게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해관계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답보 상태에 빠진 탓이다. 그만큼 불완전판매 근절과 소비자 선택권을 두고 의견 대립이 치열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11월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 방안’ 관련 공청회를 열고 12월 전후로 최종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끝난 후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며 “소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제도 개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올 상반기 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과 관련해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올 3월 금감원은 현장검사 결과와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며 제도 개선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후에도 금융 당국은 거듭 ‘늦지 않게’ 발표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내부적으로는 대략의 얼개를 잡았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팔 수 있는 판매 채널을 예·적금 판매 창구와 물리적·공간적으로 분리하고 판매 직원 자격요건도 강화하는 것이 방안의 핵심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 협의도 이미 진행했다.
그럼에도 발표가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속사정이 있다. 우선 제도개선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7~8월에는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와 함께 가계부채 급증 등 굵직한 현안이 잇달아 터졌다. 그 사이 금융위원장 교체까지 이뤄지며 당국이 준비 중이던 주요 정책 발표도 불가피하게 미뤄졌다.
근본적으로는 워낙 따져볼 것 많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당국의 고심이 깊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고위험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방안까지 검토됐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4년여 만에 비슷한 사고가 또 한 번 터진 것인 데다, 이번 사태는 특히나 소비자 분노가 컸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 선택권을 중요시하는 쪽에서는 최소한의 장치 정도만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자 장사’ 손가락질 속에 비이자 사업에서 ELS 덕을 크게 봤던 은행들은 현실적인 규제 강화 후 판매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해외 선진국 사례들도 논의에 포함됐을 뿐만 아니라 은행·증권 업권 간 형평성, 고객의 금융 지식 수준 고려 등 거의 모든 요소들이 검토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안에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금융 당국이 꺼내든 카드는 공청회다. 물론 주요 정책 발표 전 공청회를 여는 것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해관계자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데다 제도 개선의 목적이 ‘소비자 보호’인 만큼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금융 당국이 명분 만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비자 보호의 빈틈을 메우면서도 금융기관 선진화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방안들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이다. 개선안 발표 시점이 ELS 판매 은행의 자율배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후로 미뤄진 점도 당국이 얼마나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 되니 일각에서는 “금융정책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려는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당국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 그대로 ‘고난도’의 금융상품 판매제도 개선에 소비자의 의견이 얼마나 큰 정책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소비자 의견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분야에서 ‘금융시장 발전’과 ‘소비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내놔야 하는 곳은 소비자가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