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목요일 아침에] 집토끼를 지켜라

‘反이민’ 트럼프, 인재에 영주권 약속

주요국들 고급 인력 유치 경쟁 치열

자국 인재 떠나가는 韓 미래 어두워

낡은 보상체계 등 구조개혁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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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추위로 얼어붙은 뱀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보살핀다. 하지만 기력을 찾은 뱀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독니로 그녀를 물어버린다. 죽어가는 여성을 향해 뱀은 말한다. “어리석은 여자야, 내가 뱀이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1960년대의 히트곡 ‘뱀(The Snake)’의 가사 내용이다. 그는 이 노래를 이민자(뱀) 때문에 붕괴되는 미국(여성)에 대한 은유로 재해석해 국경 봉쇄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반(反)이민의 선봉에 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고학력 외국인들을 향해 그린카드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자동으로 영주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해 1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모두에게 영주권을 발급하겠다는 파격 제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미국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가장 숙련된 졸업생’이 그 대상이라고 한발 뺐다. 하지만 미국의 이민 문호 확대는 글로벌 고급 인력 분포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변수다.

과도하게 많은 이민자 유입, 특히 무분별하게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들은 어디서나 골칫거리다. ‘이민자 천국’으로 불리는 캐나다마저 주택난, 물가 상승, 일자리 문제 등 이민자 급증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빗장을 걸어잠그기 시작했을 정도다. 반면 전문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가진 해외 고급 인재는 모든 나라들이 탐내는 ‘자산’이다. 특히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의 인재는 전 세계의 ‘러브콜’ 대상이다.

캐나다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문호를 좁히는 한편 지난해 7월부터 미국 전문직 취업비자(H-1B) 소유 인재들의 취업을 허용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호주도 유학생·저숙련 근로자 유입을 억제하면서도 기술력을 보유한 인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국의 주력산업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우수 인력만 차별적으로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다. 중국·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반이민 포퓰리스트’인 트럼프 지지자 중 88%가 불법 이민자들의 대량 추방을 원하는 반면 71%는 고숙련 이민자 수용 확대에 찬성한다는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 우리나라도 뛰어들었다. 최근 법무부는 AI·로봇·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의 고급 인재들을 위한 ‘톱티어(Top-Tier)’ 비자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 이민 정책 추진안을 발표했다. 5년 내에 외국인 전문·기능 인력 10만 명 이상을 추가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캐나다 등 영어를 사용하는 부강국들을 제치고 글로벌 인재들의 선택을 받을 만큼 ‘일하고 싶은 나라’인가.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가 전 세계 대졸자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 영구 이주 수요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이주를 희망하는 외국인보다 해외로 나가고 싶어하는 국민이 많은 순유출 희망국이다. 태국·파키스탄·튀르키예보다도 순유출 희망자가 많다. 고급 두뇌들이 이주를 희망하는 순유입 희망국은 캐나다·호주·미국 등이다.

지금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의 고급 두뇌들이 속속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내 기업의 보상 체계로는 석박사 졸업생 초봉 4억~5억 원을 제시한다는 해외 빅테크들의 파격적 보상과 복지를 이길 방도가 없다. 경직된 고용 시스템, 폐쇄적 조직 문화, 이공계 경시 풍조도 인재들을 등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주거·교육·의료 등 사회 인프라는 또 어떤가.

자국 인재도 등을 돌리는 우리나라가 해외의 우수 인재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리 없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잃어가는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우선 우리의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여건,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려면 보상 체계와 노동시장, 세제를 비롯해 구시대적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수다. 산토끼를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토끼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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