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병원 중 최초로 양성자 치료기기를 도입한 삼성서울병원이 약 9년만에 간암 치료 2000례를 돌파하는 새 기록을 썼다.
14일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2015년 말 양성자 치료기기 도입 이후 현재까지 누적 치료 건수는 9만 건을 넘어섰다. 특히 간암은 두경부암·폐암·두경부암·뇌종양·췌담도암 등 양성자 치료에 가장 적합한 5대암 중에서도 두드러진 성장세를 나타냈다. 양성자 치료기 도입 3년차인 2017년 치료 환자 118명으로 세 자릿수를 넘겼다. 2019년 228례, 2023년 319례 등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간암은 주로 만성 간질환 환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발견해 근치적 치료를 적용해도 재발률이 높다. 크고 작은 혈관들이 촘촘하게 분포하는 데다 간기능을 보존해야 하다 보니 치료가 더욱 어렵다. 양성자는 몸 속 암세포를 타격하는 순간 에너지를 방출하고 사라지는 브래그피크(bragg peak)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암세포 이외의 주변 정상 세포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2000명에 달하는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성공적인 치료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러한 양성자빔의 물리적 특성 외에도 호흡동조, 스캐닝 치료 방법이 꼽힌다. 호흡동조는 호흡에 따른 종양의 위치와 방사선 치료기를 실시간 연동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환자가 숨 쉴 때마다 간 내부의 종양 위치가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치료 지점을 설정하기 어려웠다.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는 약 20년 간 축적된 호흡동조 기술을 바탕으로 치료 전 환자의 호흡 패턴 파악, 맞춤형 호흡 패턴 제시 및 교육을 통해 최적화된 호흡 동조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치료 전 4차원 특수 전산화단층촬영(CT)을 통해 암과 장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치료 도중 실시간 호흡 상태를 모니터한다. 일정한 호흡 주기에 최적화된 양성자 빔을 조사해 주변 장기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종양에 집중된 고정밀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스캐닝은 3D 프린터를 통해 원하는 모양의 물체를 만들어 내듯 종양 모양에 따라 여백이 생기지 않도록 촘촘하게 선을 그려 종양에 꼭 맞는 양성자빔을 전달해 암세포를 모두 제거하는 기술이다. 삼성서울병원이 보유한 양성자 치료기기는 세계에서 2번째로 초고속 스캐닝 방식의 치료법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간암에 대한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한 세계 최초 연구를 유럽방사선종양학회지(Radiotherapy and Oncology)에 발표해 학계 주목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이 간암 양성자 치료를 시작한 후 데이터가 확보된 1859명의 생존율은 72.9%였다. 단순 비교가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가암정보센터가 보고한 간암의 5년 상대 생존율(39.3%)보다 월등하게 높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부터 고선량 방사선 치료법인 ‘플래시(FLASH)’ 기술에 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플래시는 초당 40 그레이(Gy) 이상의 고선량의 방사선을 1초 미만의 찰나의 순간에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치료법이다. 방사선 암 치료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간암 중에서도 치료가 까다로운 혈관침윤 동반 환자에서 양성자 치료의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면역항암요법 등 다양한 치료와 병합을 시도하고 있다”며 “완치의 희망을 가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