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한강 신드롬’이 일고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순수 문학을 비롯해 문화 분야 전반에 정부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거대 자본의 수혜를 받지 못한 비주류에 대한 더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한강 작가의 사례에서 보듯 K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작품의 번역이 필수적이지만 정부가 힌국문학번역원을 통해 지원한 해외 번역출판 지원 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21억 원, 23억 원이었다. 내년에 34% 가량 늘어날 예정이지만 그래도 31억 원에 불과하다. 또 K팝의 경우 글로벌 주류 음악으로까지 도약했지만 록, 인디 밴드, 국악 등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와 함께 독립 영화 제작, 신진 미술작가 등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순수 문학인 소설도 특정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한국 문화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총 예산안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포함해서 문화·관광·체육 관련의 이른바 ‘문화재정’은 내년 8조 8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전체 국가재정(677조 4000억 원)의 1.3%에 불과하다. 역대 총 국가 예산 대비 문화재정 비중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7%까지 올라갔다가 그 이후 다시 하락하고 있다. 문화 예산 자체는 늘어나고 있지만 전체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 것이다.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총 문화재정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내년 예산은 올해 대비 2.4% 증가한 7조 1214억 원이다. 내년도 정부 총 예산안 증가율 3.2%보다 낮다. 내년 문체부 예산이 증가한다고는 하지만 금액 기준으로 지난 2022년(7조 1530억 원) 보다 적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한 토론회에 참석해 “모두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예산 책정할 때는 다른 안건에 밀린다”며 “예산 당국에 다리 하나 건설할 비용만 더 달라고 한다. 다리 하나 지을 비용이면 문화계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깜짝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한국 문학 번역 지원은 소홀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올해 소설과 학술, 인문·사회 분야의 번역 지원금은 원고지 900매 기준 1100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5년(1400만 원)보다 300만 원 줄어든 금액이다. 번역 지원금은 문학번역원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위해 한국 문학의 해외 출간 계약 체결을 완료한 작품을 대상으로 번역가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그동안 한강 작가의 작품 번역과 해외 교류에 문학번역원 자금 10억 가량이 투입됐다.
문학번역원이 집행한 번역출판 지원은 2015년 108건에서 지난해 215건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번역 지원 예산이 번역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측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내년에는 500건 이상의 번역 지원 신청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 문학 번역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무대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외국인 대상으로 진행되는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에서 수료할 경우 공식 학위가 주어지지 않는다. 번역 대상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7개 언어다.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이 더 활발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신력을 갖춘 정부 인증의 전문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안주철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은 “주로 20~30대가 작가를 지망하는 데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이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또 세계 문학 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