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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고려아연 자사주 가처분 판결…인용시 곧장 지분 경쟁, 기각시 23일까지 공개매수 [시그널]

고가 취득 배임, 주총 대신 이사회 결정이 쟁점

부분 인용이면 주총 통과시까지 연장 가능성도

인용되면 베인까지 모두 중단, 주가 충격 우려

영풍·MBK 장내 매입 개시, 임시 주총 소집할 듯

트라피구라, 적극적 백기사 역할 자처할지 주목

국민연금 "장기적 수익률 제고로 판단" 즉답 피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박기덕(왼쪽부터) 사장, 최 회장, 조현덕 변호사. 연합뉴스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박기덕(왼쪽부터) 사장, 최 회장, 조현덕 변호사. 연합뉴스




법원이 고려아연(010130)의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 허용 여부를 결정할 판결일을 이달 21일로 예고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분수령을 맞게 됐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중단되고 곧장 양측 간 지분 매집 경쟁으로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기각이나 부분 인용 판결이 나온다면 자사주 공개매수 상황을 23일까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 기업이자 고려아연 지분을 1.49% 보유 중인 트라피구라의 경영진이 다음 달 국내에서 최 회장 등을 만나기로 해 추가적인 백기사 등판 여부에도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영풍·MBK가 최 회장 등을 상대로 낸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사건을 두고 양측을 심문한 뒤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기록을 검토해 21일 오후나 늦어도 22일 오전에는 결정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진행 여부를 판가름할 날짜가 특정됨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인용, 부분 인용, 기각 등 세 가지 판결 시나리오를 두고 주판알을 튕기게 됐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통상적인 주가보다 비싼 주당 89만 원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허용할 수 있는지와 임의 적립금 사용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임의 적립금은 회사가 정관이나 주총 결의에 따라 임의로 마련하는 준비금을 뜻한다.

우선 주당 89만 원, 총 3조 2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 자체를 두고 영풍·MBK는 주주에 대한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한다. 고가 매수 행위인 데다 특정 주주의 이익에만 기여한다는 이유에서다. MBK의 입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아예 없던 일이 된다. 금융감독원이 정정을 요청하게 돼 베인캐피털 공개매수도 함께 중단된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해 자사주 공개매수는 외부 세력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해 기업가치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날 심문에서도 영풍 측 대리인은 “자사주 공개매수는 의결권이 없어 프리미엄이 붙을 이유가 없다”며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는 기존 가격으로 회귀하는데 회사는 1조 3000억 원가량의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이에 “한국에서 자사주 취득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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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MBK는 이날 또 다른 쟁점인 이사회의 임의 적립금 용도 변경 가능 여부를 두고도 “배당 가능 이익에 포함시킬 때는 반드시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풍·MBK 측의 주장대로 만약 주총이 필요한 것이 맞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고려아연이 주총을 열어 해당 안건을 통과시기까지 상당 기간 공개매수를 연장해야만 한다. 영풍·MBK 지분이 고려아연을 현재 살짝 앞서 있는 구도여서 자칫 주총에서 처리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 측은 “자본시장법 특례 규정에 따라 상장회사는 이사회 지위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다”며 영풍·MBK 측 주장을 전면 부정하는 입장이다. 법원이 고려아연의 뜻대로 이사회 결의로도 임의 적립금 사용을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자사주 공개매수는 예정대로 23일 종료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만약 법원 판결로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계획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MBK 측은 이때 임시 주총을 소집해 장내 매입 방식으로 추가 지분을 확보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늘어나는 만큼 MBK의 지분율이 높아지게 돼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또다시 압박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트라피구라의 제레미 위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리처드 홀텀 이사 겸 차기 CEO가 다음 달 중순 최 회장과 만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트라피구라는 2022년 고려아연 자사주를 2000억 원어치 매입하며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 회사다. 니켈 등 원자재 공급 관련 사업 협력 강화뿐 아니라 지분 교환, 장내 매수 등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도 고려아연 측의 적극적인 백기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풍·MBK는 지난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5.34%를 확보해 전체 지분율을 38.47%로 늘린 상태다. 양측은 과반의 의결권을 차지하기 위해 약간의 지분도 아쉬운 상황이다. 여기서 고려아연 지분 7.8%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캐스팅보트로 꼽힌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분쟁 관련 의결권 행사에 대해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이날 영풍정밀(036560)은 전 거래일 대비 27.07% 급락한 2만 2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21일 종료되는 최 회장 측 공개매수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3.78% 상승한 82만 4000원에 마감했다.


황정원 기자·이충희 기자·천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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