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보안 기업들이 ‘기회의 땅’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중동 각국이 ‘포스트 오일(석유 이후)’ 시대에 대한 대비로 디지털화를 적극 꾀하면서 사이버 보안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고, 시장 규모도 연평균 1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럽과 아프리카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로도 삼을 수 있어 중동은 국내 보안 업체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보안 업계에 따르면 안랩(053800)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이버 보안·클라우드 기업 ‘사이트’와 합작법인(JV) ‘라킨’ 설립을 완료했다. 라킨 설립은 4월 안랩과 사이트가 현지 JV 설립 계약을 체결한 것에 따른 것으로, 안랩과 사이트가 각각 25%와 75% 비율로 공동 출자했다. 안랩과 유기적인 연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이트의 자회사 사이트 벤처스는 744억 원을 들여 안랩 지분 10%를 인수해 2대주주가 됐다.
안랩은 이번 JV 설립을 계기로 중동 시장에 최적화된 보안 솔루션과 기술을 공급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내 공공기관 및 기업에 PC·모바일·서버 등을 보호하기 위한 엔드포인트 보안 제품을 공급하는 동시에 향후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위한 보안 제품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안랩은 중동을 발판으로 삼아 유럽과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지니언스(263860)도 이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신규 사무소를 개설하며 본격적인 중동 시장 진출을 알렸다. 중동 지역의 기술 허브인 두바이 인터넷시티(DIC)에 자리를 잡은 지니언스는 현재 보유한 50여개의 중동 고객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앞서 38억 원 규모의 국책 사업을 따낸 것을 계기로 중동에서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책 과제 ‘사이버보안 국제협력기반기술개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지니언스는 향후 현지 시장에 적합한 관리형 사이버 보안 시스템을 개발·공급할 계획이다.
이 외에 파수(150900)도 8월 UAE의 보안 기업 사이버나이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중동 시장 공략에 나섰다. 파수는 사이버나이트를 통해 2026년까지 중동에서 매출 400만 달러(약 55억 원)를 기록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주요 보안 기업들이 중동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까닭은 성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중동의 보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8억 달러(약 20조 원)에서 연평균 9.6% 성장하며 2028년 234억 달러(약 32조 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보안 기업들은 중동을 통해 상대적으로 작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익원 다변화를 통해 실적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중동이 유럽과 아프리카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것 역시 긍정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많은 중동 국가들이 높은 석유 의존성에서 벗어나 디지털 주도권을 쥐기 위해 IT와 AI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면서 보안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보안 기업 입장에서는 중동에서 입지를 확보하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과 아프리카에도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 보안 기업이 주도권을 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패권을 쥔 곳이 없기 때문에 국내 보안 기업들에게도 아직 기회가 열려있다”고 덧붙였다.